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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책을 냈습니다.

바로 저자 웨인다이어....
는 아닙니다. ^^

변화경영연구소의 선배 신종윤 연구원이 웨인다이어의 신간을 번역출간했습니다. 역자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리고 또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이 책은 그의 첫 작품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틈틈이 번역을 해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해본 분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저는 또 이 사건(?)을 빌미로 여러분도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니 화이팅하자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그는 지금 참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웨인다이어는 코치들에게도 많이 읽히는 저자이니, 기존에 그의 책을 접하신 분들이라면 읽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아직 저는 읽지 않았습니다. ^^;;;

켄윌버를 비롯해 노자의 도덕경이 참 많은 이들을 물들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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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력이란 에고 또는 페르소나 편에서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와중에 유기체 또는 환경적인 면들을 억제하려는 선형의 일치된 노력이다." - 켄 윌버 Ken Wilber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자기계발계에서는 이에 대해 아주 명쾌해(?) 보이는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 답은 바로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라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강한 의지력을 발휘하여 나약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기자신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켄윌버의 한 마디는 이러한 해답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매번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의지력은 자신의 다른 쪽 면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용기라고 이름 붙인 의지가 필요했던 것이며, 무기력한 나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열정이라고 이름 붙인 의지가 필요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게임에 반드시 승,패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해도 질 수 밖에 없는 게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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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이 될 것이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지만 어디에도 집은 없을 것이다." 캐나다의 미디어 연구가 마샬 맥루한 Marshall McLuhan이 미래의 세계를 이렇게 예견한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면 이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커피숍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는 거리에서,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건 일할 수 있다. 휴대폰, 노트북, 넷북, 스마트폰 등 일을 할 수 있는 도구들도 갈수록 다양화, 소형화 되고 있으며, 그 값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반면 성능은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환경이 주는 이점을 다 누리는 것은 둘째치고, 그것에 적응하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곧잘 유목민-노마드nomad-에 비유되곤 한다. '잡노마드 사회 Job nomaden'를 쓴 미래학 전문가 군둘라 엥리슈가 그랬고,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도 '호모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L'Homme Nomade'이란 책에서 같은 비유를 했다.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의 인간과 유목민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그 속성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유목민이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사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는 어떠한가? 아직까지 대세라고 하기는 어려워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살고 있다. 각종 IT기기로 중무장하고 인터넷 접속만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건 사무실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직업을 수시로 바꿔가며 혹은 프로젝트를 따라서 이곳저곳 거처를 옮겨가며 전국각지 혹은 전 세계를 누비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일하는 모습은 과거와는 비교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달라지고 있으며, 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우리가 농경사회라고 부르는, 인류가 농업에 의존해 살던 때가 있었다.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2,3백전의 이야기 이다. 이 때는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직업과 삶의 구분이 없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일을 하는 것이고,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것이 곧 삶이었다. 이는 오로지 일만하는 무료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하고는 다르다.

하지만,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며 사람들은 공장으로 나가게 되었고, 출근과 퇴근이라는 개념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는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일터가 공장에서 사무실로 옮겨졌고, 커다른 기계를 만지는 대신 컴퓨터를 만지게 되었다. 삶의 모습은 변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인 투 파이프 9 to 5'라는 표현이 그동안의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이제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과거 그 옛날의 것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기 이전의 유목민의 삶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일과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일과 삶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현대인이 안고 사는 커다란 고민거리 중의 하나가 아마 일과 삶의 관계, 그 중에서도 이 둘 사이의 균형(work & life balance) 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갈수록 빠르게 변해만 가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아니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갖가지 자기계발을 해가며 부지런히 세상을 쫓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애를 써도 남들보다 앞서가기는 커녕, 제 자리를 유지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균형같은 것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어진다. 어느새 일과 삶에서 삶의 영역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일이 삶을 야금야금 먹어치워, 나중에는 자신의 삶이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굳이 따지자면, 삶보다는 일쪽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온 것이 사실이다. 가난하고 먹고 살기 힘든 시기를 살아온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오로지 일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일과 삶의 균형을 부르짖으며, 먹고살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삶은 즐기는 것이고, 일은 그 삶을 더 풍요롭고 윤택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일과 삶 사이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일과 삶 사이에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을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인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것은 바로 1인기업이다. 1인기업은 일과 삶의 영역 중 단순히 일의 영역에만 포함시킬 수 없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1인기업은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 일하는 것을 넘어, 일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 둘이 통합되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외적으로는 기업의 구성원이 1인인 사업체에 불과할지 몰라도, 정작 1인기업가 자신은 그것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유목민이 유목을 자신의 직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1인기업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을 때, 그것은 단지 균형있는 일과 삶이 아닌 '지속적으로 굴러가며 수익을 낼 수 있는 삶(workable life)'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게 되면, 좋던 일도 싫어진다고 말한다. 이 말이 모든 이에게 통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어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지 않고, 우리의 삶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직업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자체가 수익을 내도록 만드는 것은 어떨까? 나는 그것이 1인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1인기업가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로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어 workable life라는 표현을 썼지만, 일과 삶이 통합된 이러한 삶의 모습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봐야할 때이다. 

* 이미지출처: http://www.flickr.com/photos/66535891@N00/3235595837/siz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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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2 00: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최코치님,반갑습니다.나광복입니다^^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는데, 우연히 방문해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작년2월부터 재무설계를 기반으로한 자산관리서비스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12월에 1인 창조기업 등록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주 방문할것 같군요^^ 올해 가진 계획 속에 풍성한 한해되시길 바랍니다!
    • 2010/01/12 12: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나광복 코치님.
      여기서 뵙게 되네요.^^
      코치님의 전문분야에 코칭을 접목해나가시는 모습이 멋지네요. 많은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언어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울 때가 많다. 언어로는 나의 느낌, 나의 생각을 듣는이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바닥에 깔려있어서인지, 나에게는 항상 그것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다. 한정된 언어와 상징체계, 그리고 그 한정된 것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나의 어휘, 언어구사능력을 등에 없고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내가 아는 것, 내가 느끼는 것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전달하는 의미 자체도 대략 그러할 뿐, 정확하지 않은채로 말이다. 이는 나의 언어구사능력이 떨어지는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언어가 같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부정확하기 짝이 없는 언어와 상징들이 우리의 삶을 상당부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이러니 한 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른 언어라 함은 세계 각국의 언어가 아닌, 과학이나 수학과 같은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설명하는 다른 언어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적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400년 전만 해도 모든 악천 후와 모든 질병, 정상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이 마녀의 소행으로 치부되었다. 오늘날에는 분자생물학자와 기상학자들이 불과 몇 백년 전만 해도 너끈히 여자들을 화형시킬 이유가 되었을 일에 대해 설명해준다."

과학이라는 언어가 인간이 예전에는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를 갖게 해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가진 한계이면서, 그것이 갖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과학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되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경계가 극도로 확장된 것이다. 실재 Reality는 달라진 것이 없을텐데,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사람이 목숨이 왔다갔다는 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다르지 않다. 양자론, 카오스이론, 운동역학과 같은 과학의 언어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근원은 무엇인지에 관해 우리의 이해의 폭을 빠른 속도로 넓혀주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일이 기존의 종교나 신비주의의 언어가 아닌 과학의 언어로 가능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로우며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렇듯 언어는 단지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의 역할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의 근간을 이루며, 우리가 생각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는 결정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단어 하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혹은 그 단어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위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있어서도 그것에 부여하는 의미는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다. 내가 하고 있는 '코칭'이라는 단어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이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물론 이 '때'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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