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 '구본형 변화경연연구소'에서 공부하는 Lois님은 자신만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분들을 찾아 매주 인터뷰를 하고 계십니다. 이번 주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길 연구가' 김성주님의 인터뷰입니다. 자신의 꿈을 찾아 열정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내용에 너무 큰 울림이 있어 블로그에 실어봅니다.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터뷰 10: 여행가 김성주-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대의 가슴을 저격한다
전에 그는: 고시공부를 포기 못하는 만년 학생, 법무사 사무실 사무장
지금 그는: 아름다운 길 연구가, 여행 전문가
전환의 나이: 39세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나는 영화로 당신을 저격한다’ 라고 했다. 나는 여행과 풍경 그리고 스토리로 그대의 심장을 저격하고 싶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그대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싶다.
- 김성주
아무도 그의 외모를 보고는 그가 40이란 걸 짐작하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나는 그가 30대 초반의 사내라고 굳건히 믿었고,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그를 늘 ‘성주야’ 하고 불렀다. 어느 날 그의 나이를 알고 조금 놀라긴 했지만 내 눈에 비치는 그는 여전히 청년이었다. 여행지를 안내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의 잰 걸음을 보면 언제나 그의 나이를 잊게 된다. 작년에 삶의 전환을 맞은 그는 요즘 치열한 열정에 들떠 산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책으로 가득찬 1.3평의 사글세 고시원 방은 몸을 누일 공간도 부족하지만 그는 하루에도 열 두번씩 제 길을 찾아든 기쁨에 몸을 떤다.
그는 대학 재학 중에 군에 입대했고, 92년도에 제대했다. 제대한 이후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다. 고시 공부를 위해 고시촌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외적 이유였지만 넉넉지 못한 부모님 살림살이에 마냥 기댈 수 없다는 게 진짜 이유였다. 그때부터 그는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했다. 고시 공부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정규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까지 전전한 비정규직만 수십 개. 그렇게 1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는 여전히 변호사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시간을 쪼개 열심히 살고 있었다. 한 달에 20만원 하는 고시원 단칸방 신세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로. 그런 그에게 변경연을 통해 한줄기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2007년이다. 처음으로 변호사가 자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드디어 사시를 단념하는 순간이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2008년 1월 15일, 오후 4시 50분경이었지요. 그 시간은 알고 보니 제가 태어난 시간이더군요. 그야말로 제가 다시 태어난 것이죠.’
사시를 단념하기 한 달 전, ‘내가 변호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뜬금없이 든 생각이 ‘확신’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드디어 그는 4월에 법무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한 1년의 세월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사무장은 그가 가진 직업 중에 가장 쓸 만한 직업이었다. 처음으로 사람다운 생활이 가능한 액수의 월급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지난한 세월이었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따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달려왔다. 법조인은 어릴 적 그가, 이발소를 하시는 외골수 아버지에게 선물하고픈 유일한 직업이었다. 아버지는 해마다 신문에 사시 합격자 명단이 실리면 그것을 가져다 어린 아들에게 보여주셨다. 가난한 아버지의 희망이던 그는 쇠퇴한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안고 법대에 진학했다.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 건 거의 20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다. 변호사 꿈은 그가 선택했지만 동시에 이 사회가 선택해준 꿈이었다. 그 시대의 모든 이들이 그러했듯이 그는 자기답게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부모와 사회가 규정해준 ‘성공한 삶’을 위해 남이 가는 길을 이탈하지 않고 걷는 것만이 그가 선택한 최선의 길이었다.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여행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해서 그의 형편이 나아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지금 직장을 잃고 무작정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인생 최대의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의 심장이 사시보다는 여행에 뜨겁게 반응한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저녁 밥을 챙겨 먹고 서울 속살을 뒤지러 산동네를 찾아 나섰다. 버려진 곳에 자리한 명풍경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길을 나서는 그에게는 언제나 대동하는 두 친구가 있다. 지도책과 메모카드! 이 두 친구는 살아 숨쉬는 정보의 보고다. 그와 10년을 함께 해온 영진 전국 지도와 5천여 장의 카드 속에는 전국을 이 잡듯 훑고 다닌 그 간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김성주의 인터뷰전문 보기 : http://www.bhgoo.com/zbxe/188236
김성주님의 <아름다운 길 연구소> 카페 : http://cafe.naver.com/travelart
로이스님의 <아티스트 웨이-모닝페이지> 카페 : http://cafe.naver.com/morningp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