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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의 3가지 전제:
두번째, 문제의 해답은 바로 문제를 지닌 그 사람 내부에 있다.

몇 년 전인지 모르겠다. 전 국민을 흥분시켰던 드라마 한 편이 떠오른다. 박신양, 김정은 주연의 파리의 연인. 1회를 보고나서 재미있다 싶으면, 결국 전 편을 다 보고 말아야하는 몹쓸 습관이 있었던 나는 그 드라마 역시 전 편을 다봐야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회에는 예상치 못했던 참으로 아리송한 결말에 큰 허무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드라마였다. '애기야~'를 연신 외쳐대며 핑크 돼지 저금통을 들고 브라운관을 누비던 한기주(박신양)의 멋드러진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드라마에서 최고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형수가 될 태영(김정은)에게 품어서는 안될 마음을 품었던 한기주의 동생, 윤수혁(이동건)의 고백장면이 아닐까? 그 장면에서 그가 태영에게 던진 기가막힌 대사 한 마디는 당시 대한민국 뭇여성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리기에 충분했었다. 바로 '이 안에 너 있다'.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대며 그런 엄청난 멘트를 날리던 그의 모습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매력적이기 그지 없었다. 한 동안 그 한 마디는 전국민적인 유행어였었음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코칭이라는 것을 안지 얼마되지 않아 이 대사 못지 않게 기가 막힌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코칭의 3가지 전제 중 그 두번째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가 그것이었다. 어찌보면 뻔한 말인 것 같으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아리송하고 어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만 같은 오묘한 문장이었다. 어쨌든,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 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물론이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가슴 뛰게 만드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 문제는 나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 혹은 환경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 또는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말해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생긴 문제라면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고, 그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이는 모든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은 당신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 안에 해답이 있으니,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대단히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코칭에서는 이렇게 문제의 답은 내 안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이 두번째 전제에 대한 나 자신의 이해의 과정을 함께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전제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들은 설명은 바로 인간의 무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매순간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방대한 향의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에 쌓아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바다 위에 떠있는 빙산에 비유된다. 바다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빙산의 일각을 우리의 의식에, 그리고 바다 속에 잠겨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밑부분을 흔히 우리의 무의식에 비유한다. 그 무의식의 영역은 무한한 정보와 잠재력이 저장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코치는 그 사람이 스스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코치는 그것을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이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그 거대한 무의식에서 건져낼 수 있도록 말이다. 코칭을 통해 그곳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찾는 '해답'이다. 이러한 설명 또한 매력적이었으며 큰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칭을 직업으로 삼은 나로서는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 전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할 때, 먼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곧바로 해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 한시라도 빨리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항상 답을 찾는 것에만 혈안이 되기 쉽다. 우리는 학창시절 선생님께 자주 듣던 말이 하나 있다. 수 많은 시험을 볼 때마다 매번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바로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 답은 항상 문제 속에 있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답을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와 답은 입자와 파동의 모습을 함께 지닌 소립자와 같이 인간에게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진 하나인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답을 찾아 나서기 이전에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문제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 의미도 가능하면 껍질을 벗길대로 벗겨 가장 속 알맹이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문제라는 것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문제는 항상 밖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 안의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이것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말이다. 관점은 곧 입장을 만들어낸다. 입장은 경계의 양쪽 중 하나를 선택함에 의해서 발생한다. 결국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찾는다는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입장을 놓아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을 놓아버림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입장 혹은 다른 관점을 취하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다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일 뿐, 놓아버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오로지 관점의 전환만을 외쳐댄다). 이는 곧 그러한 관점을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의 해답도 결국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내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궁극의 해답은 결국 나도 모르게 그어져 있던 경계를 포기하는 것, 경계를 통해 갖게 된 나의 관점을 놓아버리는 것 뿐이다. (짧은 글로 핵심을 전하려 하다보니 양적인 설명이 부족함을 느낀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설명을 원한다면 켄 윌버의 '무경계' 또는 '의식의 스펙트럼'을 읽어보길 권한다)

경계를 지키면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며, 그 상태는 그저 문제의 일시적인 해결, 또는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와 관련된 다른 문제가 바로 뒤따라오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겪는가? 취업난으로 취직이 그 옛날 장원급제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지만, 이상하게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나올 날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나서는, 나중에 그 직장을 떠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 돈을 내고 코칭을 받는다. 이런 상황은 삶에서 수도 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로 우리가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진짜 해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한참 뒤늦게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완전한 탈출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근본적인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씨앗은 결국 내 안에 있는 사랑하는 그녀가 아닌, 경계이다. 그것이 곧 내 안에 있는 유일한 문제이자, 동시에 유일한 해답이 아닐까? 문제와 해답이 모두 내 안에 있음을 진정으로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필요가 있다.

p.s: 그리고,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그 명장면을 다시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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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의 3가지 전제:
첫번째,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코칭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 분야의 공통된 전제이기도 하다.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 그것을 계발하기 위해서 애쓸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당신은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 또는 느낌이 드는가?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반발을 했다. 누구나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끄집어 내어 쓸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또는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한 번도 써본적이 없어서 확신은 못하겠다. 있다고는 말하지만 사실 없을지도 모른다 등등. 이와 같은 말들을 많이 들었다.

'나도 정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우선 여기서 말하는 잠재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잠재력이 왜 무한하다고 말하는 것인지 그 의미에 대해 우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들을 보면 '당신은 무한한 잠재력이 있으니, 그걸 믿고 저질러라'라고 외치지만, 정작 그 잠재력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열정? 용기? 끈기? 의지력? 천재성? 그 잠재력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잠재력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는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그 잠재력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 즉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 물론 몸뚱이만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먼저 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몸은 여러가지 요소들로 구성이 된다. 뼈와 관절이 있고, 장기가 있고, 혈관도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세포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들은 또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인간의 몸은 다른 물질들과 그 구성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분명 인간은 물질 그 이상의 존재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The Great Chain of Being. 존재의 대 사슬, 이름도 거창한 이 그림은 내가 진정으로(곱하기 100을 해도 좋을 만큼) 존경하는 켄 윌버의 책에 자주 등장한다. 이 그림을 잠깐 설명하려 한다. 간단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탁월한 도해이다. 가장 안쪽의 원은 물질Matter을 뜻한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물질을 연구하는 학문은 바로 물리학Physics이다. 그런데 인간은 분명 물질 그 이상이다. 인간에게는 바로 생명Life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생명을 가진 물질이다. 그리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생물학Biology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파리도 모기도 아메바도 생명을 가진 물질일텐데, 인간이 그들과 같은 수준일리는 없을테니 말이다.

인간에게는 마음Mind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생각하고 느낄 줄 아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심리학Psychology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한발짝 더 나아간다. 인간에겐 바로 쏘울Soul, 영혼이 있다. (힙합 가수들이 흔히 "그 친구는 쏘울이 있는 친구야"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 그 쏘울과 이 쏘울이 같은지는 모르겠다) 눈에 결코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은 분명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은 신학Theology이다. 그런데 이것로도 부족하다. 끝으로 한 단계가 더 있다. 바로 정신Spirit이다. 이 정신은 앞서 논의한 모든 것의 근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긴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한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보자면, 인간은 모두 5가지의 차원을 지닌(혹은 차원에 속한) 존재이다. 차원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각 수준이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과 생명을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생명이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을 필요로 한다. 몸이 없는 인간이 있을리 없을테니 말이다. 혹은 있다한들 그를 인간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물질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만, 단순히 물질의 합이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물질이 모여 창발을 일으키고, 물질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생명체이다. 생명은 물질의 합 그 이상이다. 바로 그 이상이라는 것은 '초월'을 뜻한다. 초월은 하위 단계를 포함하면서 그 이상의 수준으로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생명은 물질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 차원을 넘어 5개의 차원을 안고 있는 존재이다.

이제야 우리가 본래 생각하려 했던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 볼 때이다. 각각의 차원에 있는 존재는 모두 그들 고유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물질의 차원에 속하는 원자 하나에도 얼마나 큰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는지는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2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생명의 차원에 있는 존재 역시 그들 나름대로 생명력이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마음은 어떠한가? 우리의 생각, 감정이 어떠한 힘을 갖는지 보고 싶다면, 유명한 6부작 다큐멘터리 '마음'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음'은 책으로도 출간되어 있다) 이정도까지만 이야기하면 이제 서서히 새로운 단어하나가 눈에 띠기 시작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바로 에너지이다. 우리가 가진 잠재력은 바로 이 에너지라는 키워드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며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면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한다. 그 에너지는 단지 육체적인 힘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인정할 것이다. 정확히 말로 뭐라할 수 없어도 분명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은 자신이 위의 5가지 차원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대부분 영혼의 단계이거나 마음의 단계에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살아갈 것이다. 자신을 그저 생명이 있는 몸뚱이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연료(먹을 것)만 채워지면 그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건 상관없이 우리는 존재의 대 사슬의 전 영역에 걸쳐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영역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인 에너지, 그 모든 에너지가 바로 우리가 가진 잠재력이다. 당신이 한낯 자신을 마음의 차원, 그 중에서도 아주 일부에만 속한 작디 작은 존재로만 인식한다 하더라도 당신 안에 잠재된 그 에너지는 절대로 어디로 가지 않고 언제나 그 곳을 지키고 있다.

코칭은 바로 당신안에 잠자고 있는 이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일이다. 두꺼운 지각을 뚫고 들어가 지구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석유를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석유를 찾기 위해 땅을 뚫고 내려가는 이유는 단 하나 아닌가? 그곳에 석유가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치를 잘못 잡아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그 큰일을 벌이지 않는다. 코칭도 마찬가지이다. 숨겨진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결코 코치도 고객도 코칭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우리 안에는 항상 폭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잠재력의 화산이 숨어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전제되어 있기에, 코칭이 존재할 수 있으며, 코칭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http://wilber.shambhala.com/html/books/kosmos/excerptG/part1.c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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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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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 입니다
    • 2010/03/0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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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신 말씀도 참 멋진 말이네요. 감사합니다. ^^

"Hello, World" 라는 것이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한 번이라도 공부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언어(progamming language) 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Pascal, COBOL, C, C++, JAVA, JSP, ASP, PHP, Ruby, Python 등 프로그래밍 언어는 그 종류가 수십 종에 달할만큼 다양하다. 어떤 언어든지 처음 배우면서 공통으로 시작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Hello, World'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실행했을 때 화면에 "Hello, World"라는 문장을 출력하는 것으로 그 임무를 마친다. 그야말로 프로그래밍의 첫 걸음마를 떼는 간단한 프로그램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cearta.ie/2007/01/hello-world/

코칭에도 이 Hello, World와 비슷한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이 바로 '코칭의 3가지 전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책이나 훈련프로그램에 따라 하는 말들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좀 더 깊은 차원에서 보자면 모두 이 3가지 전제를 기반으로 해서 코칭의 근본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지만, 이 3가지 전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둘째, 문제의 답은 바로 문제를 지닌 그 사람 내부에 있다.
셋째, 잠재력을 발휘하고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그럼 Hello, World 만큼이나 흔하디 흔한 이 이야기를 왜 또 하려는 것인가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렇듯이, 가장 처음에 배우는 것들, 기본 중의 기본, 단순한 것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고수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가장 기본적인 것의 의미를 진짜로 알고 있느냐 없느냐를 알아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대답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질문은 바로 "코칭이 무엇이가요?"라는 질문이다. 코칭을 시작한 후부터 수 없이 받아온 질문이고 매번 그 당시의 나의 이해 수준에서 적절한 답변을 해주지만, 항상 내가 정말 코칭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라는 꺼름직한 의문이 뒤따라온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 3가지 전제도 그 진정한 의미를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오랜 시간 학습을 하고 연구를 거듭하면서 이것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져 간다는 것을 느낄 뿐이지 아직도 내가 이것의 진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에 대해 더 자주, 그리고 더 깊이 탐구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미를 제대로 알면 무엇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말 그대로 코칭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하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단지 코치 뿐만 아니라 코치이(고객)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무엇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코칭도 마찬가지이다. 코칭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둘째치고,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코칭인지 코칭이 아닌지도 모른채 코칭을 한다고 하는 크나큰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지금도 너무나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칭이 아닌 것을 하며 코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코치들 사이에서 유사코칭이라는 표현이 사용될 정도이니 말이다.

코칭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리더십의 새로운 대안으로 코칭을 언급하고 있다. 당연히 여러 코칭회사를 통해 많은 수의 코치들이 배출되고 있으며, 그들은 기를 쓰고 코칭을 잘 하기위해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그런데, 정작 코칭이 무엇이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탐구를 하는 사람은 많이 보질 못했다.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부실공사가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말이다. 코칭의 3가지 전제가 지닌 깊은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코칭,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코칭이고, 무엇이 코칭이 아닌지를 가려낼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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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9 07: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오호 적시 적때에 저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군요. 3가지 전제를 들여다 보고 그것을 내가 몸소 어떻게 경험함으로서 몸으로 익힐것이라는 주제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이었는데 앞으로도 기대 됩니다 ^^
    언어에 Perl이 빠진게 아쉽다는 ^^
    • 2010/02/19 11:4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아! 그렇군요. 안그래도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perl이었습니다.ㅎㅎ 앞으로 같은 주제로 3~4편의 글을 더 쓸 예정입니다. 도움이 되신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기사: 이런 직업 들어보셨나요…신종직업 20선
http://news.mk.co.kr/v2/view.php?sc=60000007&cm=%C0%FC%C3%BC%B1%E2%BB%E7&year=2010&no=68992&relatedcode=&wonNo=68998&sID=600

제가 가장 관심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직업입니다. 새로운 신종직업을 알게 되거나,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을 알게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습니다. 브루마스터, 퍼스널쇼퍼, 테크니컬라이터 등 예전부터 알고 있던 직업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직업들입니다. 주로 제품 매뉴얼을 작성하는 테크니컬라이터 같은 경우에는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제가 한때 후보직업 중에 하나로 생각하던 것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 자체로도 신선한 자극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만 해도 변화경영전문가, 재능세공사, 아름다운 길 연구가, 퍼스널 스타일리스트 등 이름만 들어도 독특한 개성이 묻어나는 직업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1인기업의 시대는 곧 창직(Job Creation)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1인기업이라는 표현보다는 '1인창조기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같기도 합니다. 직업을 창조한다는 것 역시 생소한 개념이지만, 바로 여기에 현대인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열쇠가 숨어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것은 자유로움입니다. 더이상 틀에 자신을 가두는 속박을 견뎌내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이 두려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안에 꿈틀거리는 자유에 대한 욕망을 평생토록 덮어둘 수 없습니다. 굳이 욕망 때문이 아니더라도, 급변하는 노동구조는 끊임없이 새로운 변종의 직업을 만들어 내도록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학문과 산업이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내듯이, 직업에도 이런 창조적인 시도가 필요합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 것처럼 변화하는 노동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직업이 필요합니다. 평생 한 분야만을 판 장인(匠人)이 아닌 이상,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입니다. 직업에 대한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제 기성복 같은 직업은 벗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맞춤형 직업으로 갈아입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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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력이란 에고 또는 페르소나 편에서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와중에 유기체 또는 환경적인 면들을 억제하려는 선형의 일치된 노력이다." - 켄 윌버 Ken Wilber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자기계발계에서는 이에 대해 아주 명쾌해(?) 보이는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 답은 바로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라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강한 의지력을 발휘하여 나약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기자신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켄윌버의 한 마디는 이러한 해답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매번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의지력은 자신의 다른 쪽 면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용기라고 이름 붙인 의지가 필요했던 것이며, 무기력한 나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열정이라고 이름 붙인 의지가 필요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게임에 반드시 승,패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해도 질 수 밖에 없는 게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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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이 될 것이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지만 어디에도 집은 없을 것이다." 캐나다의 미디어 연구가 마샬 맥루한 Marshall McLuhan이 미래의 세계를 이렇게 예견한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면 이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커피숍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는 거리에서,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건 일할 수 있다. 휴대폰, 노트북, 넷북, 스마트폰 등 일을 할 수 있는 도구들도 갈수록 다양화, 소형화 되고 있으며, 그 값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반면 성능은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환경이 주는 이점을 다 누리는 것은 둘째치고, 그것에 적응하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곧잘 유목민-노마드nomad-에 비유되곤 한다. '잡노마드 사회 Job nomaden'를 쓴 미래학 전문가 군둘라 엥리슈가 그랬고,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도 '호모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L'Homme Nomade'이란 책에서 같은 비유를 했다.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의 인간과 유목민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그 속성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유목민이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사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는 어떠한가? 아직까지 대세라고 하기는 어려워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살고 있다. 각종 IT기기로 중무장하고 인터넷 접속만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건 사무실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직업을 수시로 바꿔가며 혹은 프로젝트를 따라서 이곳저곳 거처를 옮겨가며 전국각지 혹은 전 세계를 누비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일하는 모습은 과거와는 비교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달라지고 있으며, 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우리가 농경사회라고 부르는, 인류가 농업에 의존해 살던 때가 있었다.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2,3백전의 이야기 이다. 이 때는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직업과 삶의 구분이 없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일을 하는 것이고,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것이 곧 삶이었다. 이는 오로지 일만하는 무료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하고는 다르다.

하지만,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며 사람들은 공장으로 나가게 되었고, 출근과 퇴근이라는 개념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는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일터가 공장에서 사무실로 옮겨졌고, 커다른 기계를 만지는 대신 컴퓨터를 만지게 되었다. 삶의 모습은 변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인 투 파이프 9 to 5'라는 표현이 그동안의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이제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과거 그 옛날의 것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기 이전의 유목민의 삶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일과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일과 삶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현대인이 안고 사는 커다란 고민거리 중의 하나가 아마 일과 삶의 관계, 그 중에서도 이 둘 사이의 균형(work & life balance) 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갈수록 빠르게 변해만 가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아니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갖가지 자기계발을 해가며 부지런히 세상을 쫓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애를 써도 남들보다 앞서가기는 커녕, 제 자리를 유지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균형같은 것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어진다. 어느새 일과 삶에서 삶의 영역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일이 삶을 야금야금 먹어치워, 나중에는 자신의 삶이 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굳이 따지자면, 삶보다는 일쪽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온 것이 사실이다. 가난하고 먹고 살기 힘든 시기를 살아온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오로지 일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일과 삶의 균형을 부르짖으며, 먹고살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삶은 즐기는 것이고, 일은 그 삶을 더 풍요롭고 윤택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일과 삶 사이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일과 삶 사이에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을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인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것은 바로 1인기업이다. 1인기업은 일과 삶의 영역 중 단순히 일의 영역에만 포함시킬 수 없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1인기업은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 일하는 것을 넘어, 일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 둘이 통합되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외적으로는 기업의 구성원이 1인인 사업체에 불과할지 몰라도, 정작 1인기업가 자신은 그것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유목민이 유목을 자신의 직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1인기업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을 때, 그것은 단지 균형있는 일과 삶이 아닌 '지속적으로 굴러가며 수익을 낼 수 있는 삶(workable life)'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게 되면, 좋던 일도 싫어진다고 말한다. 이 말이 모든 이에게 통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어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지 않고, 우리의 삶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직업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자체가 수익을 내도록 만드는 것은 어떨까? 나는 그것이 1인기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1인기업가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로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어 workable life라는 표현을 썼지만, 일과 삶이 통합된 이러한 삶의 모습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봐야할 때이다. 

* 이미지출처: http://www.flickr.com/photos/66535891@N00/3235595837/siz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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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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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코치님,반갑습니다.나광복입니다^^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는데, 우연히 방문해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작년2월부터 재무설계를 기반으로한 자산관리서비스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12월에 1인 창조기업 등록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주 방문할것 같군요^^ 올해 가진 계획 속에 풍성한 한해되시길 바랍니다!
    • 2010/01/12 12: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나광복 코치님.
      여기서 뵙게 되네요.^^
      코치님의 전문분야에 코칭을 접목해나가시는 모습이 멋지네요. 많은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언어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울 때가 많다. 언어로는 나의 느낌, 나의 생각을 듣는이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바닥에 깔려있어서인지, 나에게는 항상 그것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다. 한정된 언어와 상징체계, 그리고 그 한정된 것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나의 어휘, 언어구사능력을 등에 없고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내가 아는 것, 내가 느끼는 것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전달하는 의미 자체도 대략 그러할 뿐, 정확하지 않은채로 말이다. 이는 나의 언어구사능력이 떨어지는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언어가 같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부정확하기 짝이 없는 언어와 상징들이 우리의 삶을 상당부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이러니 한 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른 언어라 함은 세계 각국의 언어가 아닌, 과학이나 수학과 같은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설명하는 다른 언어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적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400년 전만 해도 모든 악천 후와 모든 질병, 정상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이 마녀의 소행으로 치부되었다. 오늘날에는 분자생물학자와 기상학자들이 불과 몇 백년 전만 해도 너끈히 여자들을 화형시킬 이유가 되었을 일에 대해 설명해준다."

과학이라는 언어가 인간이 예전에는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를 갖게 해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가진 한계이면서, 그것이 갖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과학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되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경계가 극도로 확장된 것이다. 실재 Reality는 달라진 것이 없을텐데,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사람이 목숨이 왔다갔다는 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다르지 않다. 양자론, 카오스이론, 운동역학과 같은 과학의 언어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근원은 무엇인지에 관해 우리의 이해의 폭을 빠른 속도로 넓혀주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일이 기존의 종교나 신비주의의 언어가 아닌 과학의 언어로 가능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로우며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렇듯 언어는 단지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의 역할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의 근간을 이루며, 우리가 생각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는 결정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단어 하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혹은 그 단어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위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있어서도 그것에 부여하는 의미는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다. 내가 하고 있는 '코칭'이라는 단어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이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물론 이 '때'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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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5 Coaching Proficiencies are a distillation of over 20 years work by hundreds of coaches. Originally developed by Thomas Leonard and Susan Austin, the 15 Proficiencies were tweaked and perfected by the CoachVille R&D Team of 1,000+ coaches over a year period.



이 문서를 도대체 몇 번을 읽어야 할까? 몇 번을 읽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몇 번을 읽으면 문장 하나하나에 숨어있는 깊은 뜻들을 제대로 알아챌 수 있을까? 꽤나 여러 번 읽었건만, 읽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문서이다. 개인적으로는 웬만한 코칭교육과정에 참가하는 것보다, 이 문서를 진지하게 반복해서 탐구하는 것이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문서 역시 앞서 리뷰했던 ‘라이프코칭 가이드’와 같이, 기술 그 이상의 것들을 상당 분량 담고 있다. 첫 번째 기술로 소개하고 있는 ‘열정적인 대화에 끌어들이기 Engages in provocative conversations’의 세부내용을 보자면, 첫 번째 나오는 것이 ‘말하지 않은 것을 듣기 Listen for the unsaid’이다. 말하지 않는 것을 듣는 것이 어찌 단순한 기술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분명 몇 번 연습해서 익힐 수 있는 기술 technique 그 이상의 것이다.

하지만, 이 문서는 이렇게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기술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것을 연습하는 방법은 물론이며,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질문 목록, 그 기술을 쓸 때 코치들이 하는 대표적인 실수들, 그 기술이 제대로 효과를 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는 방법 등 그야말로 프로 코치들이 가져야 할 태도와 기술에 관한 모든 것을 아주 명쾌하게 제공하고 있다.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기술에 앞서 코치들이 가져야 할 자세나 태도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이러한 것들이다. 고객을 즐기기 Enjoys the client immensely, 진리를 즐기기 Relishes truth, 고객의 인간성을 존중하기 Respects the client’s humanity와 같은 것들로 이런 것들을 단순히 코칭 기술이라고 하기에는 범위를 너무 한정짓는 느낌이 있다.

정말 멋지지 않는가? 사실 이런 것들이야, 코치라면 누구나 감으로 이래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이것들을 매우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명확한 분별 distionction 을 제공하며, 그것을 익히고 활용하는데 필요한 세부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치있는 내용을,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하여 제공하는 자료는 접하기 쉽지 않다.

사실 문서 안에 제공되는 다이어그램을 비롯해, 이 문서의 내용만으로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과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읽을수록 그 가치를 더 깊게 인식하게 할 뿐아니라, 그것의 드러나지 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쾌감을 안겨주는 멋진 자료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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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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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코치님 오랜만이에요^^ 좋은 자료 감사해요~ (근데 영어 ㅋ 영어공부하면서 읽어볼께요;; )
    • 2009/11/25 12:1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네, 영어를 공부하면서까지 읽어볼 필요가 있는 정말 좋은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 열공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주변 세계에 대하여 반응하는 양식, 즉 여과기를 가지고 있다. 특정 자극은 알아채고 특정 자극은 무시하며, 자극에 따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리고 내면적 동기를 결정하는 것도 바로 여과기의 작용 때문이다. 여과기는 인간의 사고 방식과 태도, 감정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정신적 여과기가 바로 재능의 원천인 셈이다.

여러분의 여과기는 특별하다. 이 여과기는 모든 종류의 자극을 걸러 여러분만이 볼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고 동일한 자극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이끌어낸다. -100p


오랜만에 마커스 버킹엄과 커트 코프만의 'First, Break All The Rules'를 다시 읽고 있다. 집필준비를 하면서 핵심 참고도서로 꽤나 자세히 들여다 본 책이지만, 다시 읽으면서도 또 다시 많은 것을 건질 수 있었다. 엄청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능의 본질을 파해친 책인 만큼 내용에서 전하는 재능에 대한 통찰과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위에 인용한 부분은 예전에는 그리 눈여겨 보지 않았지만, 다시 읽으면서 꽤나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던 내용이다. 예전에는 사실 여과기라는 단어가 그렇게 깊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재능을 '생산적인 사고, 감정 또는 행동의 반복적 양식'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재능의 원천을 바로 이 여과기라는 단어로 대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여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또다른 힌트는 바로 '이 여과기는 모든 종류의 자극을 걸러 여러분만이 볼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고 동일한 자극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각자가 볼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 말그대로 하면 필터일 것이고, 그 외에 패러다임, 더 나아가 양자론에서 말하는 분리되지 않은 관찰자와 관찰대상, 그리고 의식, 대략 이런 것들이 후보로 떠오른다. 하지만, 여과기를 이들 중 하나로 이해하려 하면 책의 내용과는 모순되는 또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수많은 데이터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재능은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전제한다. 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여과기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과기라고 할 만한 것들은 모두 변화할 수 있는 것들이다. 패러다임 전환, 의식의 상승, 이를 통한 비이원성(관찰자와 관찰대상이 하나임을 인식)의 경험 등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재능을 만들어내는 여과기가 변화될 수 있다면, 재능을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전제로한 이 책의 내용은 다시 생각해봐야할 여지가 많아진다. 개인적으로도 더 집중해봐야할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재능의 본질을 어떤 책보다도 탁월하게 풀어놓고 있지만, 그에 멈추지 않고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려고 애썼다. 재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진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위와 같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런 문제라도 던져주는 것은 분명 고마워 할 일이다.

* 'First, Break All The Rules'는 현재 21세기북스에서 '유능한 관리자'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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