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의 3가지 전제:
두번째, 문제의 해답은 바로 문제를 지닌 그 사람 내부에 있다.
몇 년 전인지 모르겠다. 전 국민을 흥분시켰던 드라마 한 편이 떠오른다. 박신양, 김정은 주연의 파리의 연인. 1회를 보고나서 재미있다 싶으면, 결국 전 편을 다 보고 말아야하는 몹쓸 습관이 있었던 나는 그 드라마 역시 전 편을 다봐야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회에는 예상치 못했던 참으로 아리송한 결말에 큰 허무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드라마였다. '애기야~'를 연신 외쳐대며 핑크 돼지 저금통을 들고 브라운관을 누비던 한기주(박신양)의 멋드러진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드라마에서 최고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형수가 될 태영(김정은)에게 품어서는 안될 마음을 품었던 한기주의 동생, 윤수혁(이동건)의 고백장면이 아닐까? 그 장면에서 그가 태영에게 던진 기가막힌 대사 한 마디는 당시 대한민국 뭇여성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리기에 충분했었다. 바로 '이 안에 너 있다'.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대며 그런 엄청난 멘트를 날리던 그의 모습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매력적이기 그지 없었다. 한 동안 그 한 마디는 전국민적인 유행어였었음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코칭이라는 것을 안지 얼마되지 않아 이 대사 못지 않게 기가 막힌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코칭의 3가지 전제 중 그 두번째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가 그것이었다. 어찌보면 뻔한 말인 것 같으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아리송하고 어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만 같은 오묘한 문장이었다. 어쨌든,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 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물론이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가슴 뛰게 만드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 문제는 나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 혹은 환경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 또는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말해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생긴 문제라면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고, 그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이는 모든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은 당신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 안에 해답이 있으니,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대단히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코칭에서는 이렇게 문제의 답은 내 안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이 두번째 전제에 대한 나 자신의 이해의 과정을 함께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전제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들은 설명은 바로 인간의 무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매순간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방대한 향의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에 쌓아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바다 위에 떠있는 빙산에 비유된다. 바다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빙산의 일각을 우리의 의식에, 그리고 바다 속에 잠겨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밑부분을 흔히 우리의 무의식에 비유한다. 그 무의식의 영역은 무한한 정보와 잠재력이 저장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코치는 그 사람이 스스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코치는 그것을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이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그 거대한 무의식에서 건져낼 수 있도록 말이다. 코칭을 통해 그곳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찾는 '해답'이다. 이러한 설명 또한 매력적이었으며 큰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칭을 직업으로 삼은 나로서는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 전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할 때, 먼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곧바로 해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 한시라도 빨리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항상 답을 찾는 것에만 혈안이 되기 쉽다. 우리는 학창시절 선생님께 자주 듣던 말이 하나 있다. 수 많은 시험을 볼 때마다 매번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바로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 답은 항상 문제 속에 있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답을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와 답은 입자와 파동의 모습을 함께 지닌 소립자와 같이 인간에게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진 하나인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답을 찾아 나서기 이전에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문제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 의미도 가능하면 껍질을 벗길대로 벗겨 가장 속 알맹이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문제라는 것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문제는 항상 밖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 안의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이것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말이다. 관점은 곧 입장을 만들어낸다. 입장은 경계의 양쪽 중 하나를 선택함에 의해서 발생한다. 결국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찾는다는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입장을 놓아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을 놓아버림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입장 혹은 다른 관점을 취하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다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일 뿐, 놓아버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오로지 관점의 전환만을 외쳐댄다). 이는 곧 그러한 관점을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의 해답도 결국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내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궁극의 해답은 결국 나도 모르게 그어져 있던 경계를 포기하는 것, 경계를 통해 갖게 된 나의 관점을 놓아버리는 것 뿐이다. (짧은 글로 핵심을 전하려 하다보니 양적인 설명이 부족함을 느낀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설명을 원한다면 켄 윌버의 '무경계' 또는 '의식의 스펙트럼'을 읽어보길 권한다)
경계를 지키면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며, 그 상태는 그저 문제의 일시적인 해결, 또는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와 관련된 다른 문제가 바로 뒤따라오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겪는가? 취업난으로 취직이 그 옛날 장원급제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지만, 이상하게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나올 날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나서는, 나중에 그 직장을 떠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 돈을 내고 코칭을 받는다. 이런 상황은 삶에서 수도 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로 우리가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진짜 해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한참 뒤늦게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완전한 탈출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근본적인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씨앗은 결국 내 안에 있는 사랑하는 그녀가 아닌, 경계이다. 그것이 곧 내 안에 있는 유일한 문제이자, 동시에 유일한 해답이 아닐까? 문제와 해답이 모두 내 안에 있음을 진정으로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필요가 있다.
p.s: 그리고,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그 명장면을 다시 한 번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