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의도가 나를 이끈다.

에세이 2010/07/28 10:59 Posted by 최코치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봅니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해 한 가정을 꾸렸고, 아빠가 되었습니다. 또 코치가 되어 예전에 직장인으로 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도 많이 달라졌고, 접하는 문화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많은 책들을 읽었고, 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많은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기존의 내가 살던 세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내가 철썩같이 믿었던 것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고,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지닌채 나만의 세상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일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때의 시점으로 돌아가 지금을 보면 현재의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의 시점에서 그때를 돌이켜보더라도 내가 그 때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어떻게 지금 여기까지 와있을까 신기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없이 살다보니, 여기까지 흘러온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나를 오게 만든 것은 '의도하지 않은 의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이들을 보면 뚜렷한 목표나 비젼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마치 자신의 삶은 의미가 없다는 듯이 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강박증이 오히려 자연스로운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는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았을 때 떠오르는 자연스로운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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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기업가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나 자질들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굳이 '살아가기 위해'가 아닌 '살아남기 위해'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잠시 설명해야 될 것 같다. 요즘 주위를 보면 1인기업가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길 원한다. 나 역시도 이런 삶을 살고 싶어 직장을 박차고 나왔고, 지금 이렇게 1인기업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시작할 당시에는 중요한 한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바로 내가 꿈꾸었던 그 삶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1인기업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느냐의 문제보다는 그것이 곧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국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 중의 한 명이었던 안철수 교수 역시 CEO 재직 시절 항상 안철수연구소의 성공을 '생존'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성공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생존하려고 애쓰다보니, 그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안철수연구소를 떠나면서도 역시 연구소의 성공적인 생존에 대한 자축과 감사의 말로 시작하는 퇴임사(http://kr.ahnlab.com/company/pr/founder_retire.jsp)를 남겼다. 그래서 적어도 이 글에서는 1인기업가의 삶을 다른 거창한 말보다는 다소 위험한 느낌이 드는 '생존'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고 1인기업가의 삶이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려야 하는 암울한 모습은 결코 아니니 오해없길 바란다. 생존이 전부는 아니지만, 반드시 충족되어야할 필수조건임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 뒤에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질문은 바로 '그렇다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일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며, 각자 내어놓은 답의 가짓수도 다양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은 1인기업을 1인기업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영업자라고 부르지도 않고, 프리랜서라고 부르지도 않고, 1인기업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들과는 다른 1인기업만의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갖추어야 할 능력과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필요로 할 것이다. 필자에게 지금 언뜻 생각나는 것들만 적어보면 전문성, 스피드, 유연함, 열린 사고, 통합적 사고, 체력, 집중력, 높은 에너지를 유지하는 커뮤니티, 1인기업가의 마인드셋 등이다.

오늘은 이중에서도 특히 1인기업가로서의 마인드셋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인기업가의 DNA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디가나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1인기업가로서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사람들이라면 언제든지 1인기업가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처럼 직장생활을 하다가 1인기업의 세계로 뛰어들었거나, 뛰어들려고 하는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기본적인 마인드셋이 완전히 자리잡지 않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직장인의 삶과 직장을 나와 사는 삶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수입을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얻을 수 있는 것은 한 푼도 없다. 그리고 1인기업가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이다. 당연히 하는 행동,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이고 가장 밑바닥의 근본적인 사고방식부터 달라지고,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직장인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1인기업가로 살아남기 어렵다. 1인기업은 말 그대로 하나의 기업이다. 그 말은 1인기업가는 한 기업의 CEO로서의 역할을 해야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의 기업 그 자체로 살아가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1인기업가이지만, 마인드는 샐러리맨으로 살거나 그렇게 살아가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나 역시도 그러했었다.

그럼 이 마인드셋이 무엇인지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직장인과 기업가의 마인드 중 가장 확연하게 차이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관점이다. 직장인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돈을 지키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그리고 그것을 조금씩 불려나가는데 집중한다. 2009년의 베스트셀러 중에 '4개의 통장'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이 돈에 대한 직장인의 마인드를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가로 들어서는 순간 돈에 버는 것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바로 그것이 투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용과 투자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몸으로 알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내가 얼마를 투자하고, 그것을 통해 얼마를 벌수 있는가(혹은 어떤 가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가)에 집중하기 보다는 당장 내 수중에서 얼마가 빠져나간다는 것에 집중하다. 그런데, 1인기업가가 이런 관점을 유지할 경우 엄청난 기회들을 놓치는 경우가 생길수 있다. 필자 역시도 지난날 이러한 관점의 위험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수정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꽤나 많은 노력을 했었다.

또 하나는 바로 신뢰에 대한 것이다. 1인기업가은 곧 자신이 걸어다니는 기업이다. 21세기는 인터넷으로 감출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진 세상이다. 감출 수 있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신뢰이다. 많은 경제학자 또는 미래학자들 역시 21세기의 경제를 움직이는 힘으로 신뢰를 꼽고 있다. 하지만, 1인기업을 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이 조직의 이름에 가려져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신뢰를 망가뜨리기 쉽다. 신뢰라는 것은 얻기는 어렵지만, 잃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방송인, 스포츠계의 인사들에게 공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1인기업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1인기업가로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만큼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1인기업가는 어느정도 공인이 가지는 속성을 가진다. 모든 것에 자신의 이름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뢰라는 것이 1인기업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1인기업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혼자서 일한다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갖추어야 할 내적, 외적 자질들이 많다. 그것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의식적으로 마인드셋을 갖출 필요가있다. 여러가지 것들이 필요하지만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나의 생존을 결정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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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기업가의 삶, 심플할 것

천직/1인기업 2010/07/01 14:46 Posted by 최코치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을 꼽자면 바로 자신에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곧 그 질문을 뒤따르는 것이 바로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이다. 이것은 분명 의미있고 중요한 질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얻는 해답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너무 많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다. 시간과 육체적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해야 할 것은 한 없이 늘어가니 어느새 지쳐 나가 떨어지기 일쑤다.

몇 가지 되지 않는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서점나들이이다. 대형서점 근처를 갈 일이 있으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 서점을 들른다. 하는 일이 그런지라 서점에서도 빼놓지 않고 항상 들르는 곳은 자기계발 코너이다. 그런데 줄기차게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을 보고 있지면 때론 멀미가 날 지경이다. 온갖 섹시한 제목과 디자인으로 치장한 책들은 하나같이 "~해라"라고 외치며 목에 핏대를 세운다. 인간이 그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 뭐가 이리도 많단 말인가? 요즘 같이 변화가 빠른 세상속에서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이렇게 많으니,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 당연해보이기까지 한다.

이것은 1인기업가의 길을 걷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혼자서 일하다 보면 해야할 일은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사업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신경써야 하며, 예전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할 일도 생긴다. 1인기업가로 나선 후 명함하나 만드는 일조차도 상당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많은 일들을 모두 나 홀로 처리하면서 진정 내가 원했던 삶을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수많은 일더미에 묻혀 정작 하고 싶었던 일들은 어느새 뒤로 밀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1인기업가들에게는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대신에 "내가 지금 하지 말아야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해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해야만 하는 일들은 항상 너무도 많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좋은 회사를 넘어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 역시 '힐 일' 리스트 만큼이나 '그만둘 일' 리스트를 많이 활용했다는 것은 그 의미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킴벌리 클라크사의 다윈 스미스는 회사의 CEO가 되고 나서 '직함에 굽실거리는 것'이 계급의식과 관료적 계층 질서의 상징이라고 보고, 사내에서 직함을 없애 버렸다. 외부에서 직함을 요구하는 자리를 제외하고는, 직원 대부분이 직함을 잃게 된 것이었다. 상사의 눈치를 보거나, 자신의 권위를 다지기 위해 애쓸 시간에 차라리 진짜 해야할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좋은 기업을 넘어..위대한 기업으로 - 짐 콜린스, 참조)

플래너를 갖고 다니며, 하루를 계획하고 시간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쓸데없이 시간을 잡아먹는 일, 굳이 내가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정리하는 것이 더 필요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1인기업가로 나서더라도 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누리며 살기는 힘들지 모른다.

1인기업가로 나선 대부분이 그 길을 택한 이유 중 하나로 바로 "자유"이다. (플로우강님의 포스트 참고)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것이다. 자유로움은 해야 할 것이 많은 상태에서는 얻을 수 없다. 무언가를 많이 안고서는 이룰 수 없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가장 중요한 것만 안고 살아가는 단순함이 바로 자유로움의 전제조건이다. 다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것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안고 살아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모두 버렸을때, 남은 하나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찾는 것이다. 사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해야할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원치 않는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실수를 자주 한다. 그런 실수를 사전에 막는 가장 쉬운 방법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라고 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부분 '채움'이 아니라 '비움'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자신의 훌륭한 조각상은 필요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 준 것일 뿐이었다는 미켈란젤로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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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무의미한 노동보다 의미있는 노동을 더 선호한다. - 애이브러험 매슬로우

우리는 행복하게 일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천직, 꿈의 직업을 미치도록 찾고 싶은 분들을 모십니다.
57일간의 빡센 자기탐색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거머쥐고 싶지 않으신가요?

* * *

#무엇을 하는가?
8주+1일=57일 동안 나만의 꿈의 직업을 창조해낸다.

#어떻게 하는가?
천직찾기 전문 최코치의 진두지휘
쉽고 강력한 도구를 기반으로 한 치열한 자기탐구
오프 수업을 통한 개별튜닝+심층 질의&응답+코치의 강의
매주 1권 분량의 필수학습도서 열공

#이런 분들은 꼭 지원해주세요.
미치도록 자신의 꿈의 직업, 천직을 찾고 싶은 분
그것을 찾기만 하면 빠른 시일내에 시작할 마음이 있는 분
그것을 찾기만 하면, 진정한 프로페셔널로 살아갈 자신이 있는 분
그것을 찾기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기꺼이 투자할 의도가 있는 분
그것을 찾기 위해 모든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을 마음의 준비가 된 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이 과정을 삶의 0순위로 놓고 몰입할 수 있는 분

#일정 및 활동개요.
1일차. 오리엔테이션
1주차. 천직 창조를 위한 MindSet
2주차. <직업 창조의 기술> mini 워크샵
3주차. Define: 직업을 정의하라.
4주차. Discover: 재능을 발견하라 Part 1
5주차. Discover: 재능을 발견하라 Part 2
6주차. Draw: 미래를 그려라
7주차. Design: 직업을 디자인하라
8주차. 최종보고: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

* 매주 별도의 학습과제 및 수행과제가 있습니다.
* 과제수행을 위해서는 매주 10~20시간 정도를 요구합니다.
* 오프 수업은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약4시간을 예상합니다.

#진행관련사항
시작:
6월 26일(토) 오전 10시 예정 (오리엔테이션)
장소: 강남역 또는 선릉역 부근 모임장소 (TOZ,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 등...)
인원: 12명 이내
비용: 참가비 30만원 (+ 패널티선납금 70만원)
- 참가비를 최소화하고, 강력한 패널티(벌금) 제도를 도입합니다.
- 결석, 지각 및 과제 미수행시 벌금이 적용되며, 패널티선납금 70만원 중 벌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프로그램 종료시 전액 반환됩니다.
- 벌금의 예: 결석30만원, 지각 10분당 5만원, 과제 미수행 20만원 등
- 즉,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하시는 분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최상의 성과를 얻어가실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 패널티 제도는 한시적으로 진행되는 방식이며, 추후 100만원 상당의 참가비로만 운영될 계획입니다.
진행: 모든 진행/강의는 최지환 코치가 맡습니다. 
- 최코치는 인간성, 전문성 양쪽 모두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이며, 자세한 사항은 블로그(http://choicoach.com)의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신청방법
1) 본 공지사항을 아주 꼼꼼히 읽어본다.
2) 마음의 결정이 서면 신청서를 작성한다. (아래 클릭)


3) 신청서를 성의껏 작성하여 메일로 제출한다 (보낼 곳, coach@choicoach.com)
4) 최코치로부터 참가확정 SMS를 받으면, 안내에 따라 비용을 입금한다.
5)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여 자세한 안내를 받는다. 
- 신청서 접수는 6/23(수) 24시에 마감합니다.
- 선착순을 기본으로 하나, 신청서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결정합니다.
- 즉, 신청서를 냈더라도 참가하지 못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런 분들은 꼭 지원하지 마세요.
그냥 호기심에 한 번 해볼까 하는 분
며칠하다 아닐 것 같으면 그만 두실 분
자신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분
직업을 단지 밥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시는 분
자신의 관점, 생각만을 고집하며 닫힌 마음으로 참가하실 분
충고,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분

 


* 다음 프로그램 진행 시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은 댓글(비밀글)로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진행 전에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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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변화란 정말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하고 싶지만, "그렇다"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변화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는 나의 개인적인 것만 해도 수 없이 많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 대신에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인간에게 변화는 정말 그렇게 어려워야만 하는 것인가?"

잠시 망설여지긴 하지만, 이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다. 이 질문에 까지 "그렇다"라고 대답해야한다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릴테니 말이다. 그렇다. 인간의 변화란 것이 반드시 어려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가끔씩은 남들이 죽도록 어려워하는 일들도 쉽게쉽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나 자신은 평생토록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다가 끝낼 법한 일도, 독하게 마음 먹고 단번에 해치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런 것을 보면, 인간의 변화란 것이 꼭 그렇게 어려워야만 하는 법은 아닌 것 같다. 단지 내가 모르고 있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 뭔가가 무엇일지 진지한 탐구가 필요한 때이다.

*
“방법은 백만 가지도 넘지만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무수한 방법 중에서 자신만의 방법을 제대로 골라낼 수 있다. 원리는 무시하고 방법만 찾으려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문제가 생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2009년부터 개인적으로 몇 가지 인상 깊은 사건이 있었다. 원더걸스가 빌보드 HOT100 차트에 진입했던 것이다. 아시아 가수로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그녀들과 프로듀서 박진영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여, 좌충우돌 힘겨운 도전기를 소개했다. 또한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비(RAIN)는 영화 '닌자 어쌔신'의 주인공을 맡으며, 국내 배우 최초로 헐리우드의 단독 주연을 맡는 대기록을 세웠다. 연예계뿐 만이 아니다. 이미 전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피겨여왕 김연아는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감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록으로 보자면 금메달을 한 개 더 걸어도 될 법한 기록이었다. 앞으로 더더욱 커다란 성장과 성공의 길을 걷겠지만, 이들은 이미 큰 성공을 이루어 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러한 기록,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며 우리는 그것을 '사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사례를 사례로만 기억하길 원치 않는다. 사람들의 이러한 욕구는 사례를 바탕으로 한 '모델'을 낳게 한다. 누군가의 성공 사례를 다른 사람들도 따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모델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바로 자기계발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의 변화를 가장 현대적인 맥락으로 표현한 말이 아마도 '자기계발'일 것이다.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기계발의 필요성과 이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져가고만 있다. 서점엔 자기계발 코너가 따로 있으며, 그 코너에는 날마다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삼아서 책을 읽는 나조차도 소화하기에 벅찰 정도의 엄청난 양이다. 그런데, 바로 이 책들이 담고 있는 내용 대부분은 앞서 설명한 사례와 모델에 해당한다. 자기계발을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불만을 토로한다. 바로, 대부분의 자기계발 서적의 내용이 거기서 거기이며,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읽다보면 나중에는 그 내용에 식상하고, 더 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내용이긴 하나, 자신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누군가는 분명 그 모델을 가지고 성공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에겐 잘 통하지 않는다. 아니, 통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통할 때까지 그것을 지속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그것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풀기 어려운 의문점들이 너무나 많이 만나게 된다.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모델은 그 사람의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모델이 분명 의미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다 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참고자료로 활용하려 하기보다는 마치 누구에게나 다 통하는 궁극의 솔루션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성공확률이 낮을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근사한 옷맵시를 뽐내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실패는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델에 앞서 ‘원리’이다. 모델은 분명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리가 무엇인지 알고 난 다음에 필요한 것이다. 원리는 말 그대로 원리일 뿐, 그것이 방법까지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원리는 수많은 모델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만들어진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원리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알던 모르던 항상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테니 말이다. 여러 모델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들, 그것들을 추출하여 정제해 낸 것을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리마다 각각 그 수준이 다를 것이다. 얼마나 순도가 높냐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된다. 모델들의 공통점에서 추출한 원리가 있는가하면, 그러한 원리들이 가진 공통점을 뽑아 만든 ‘원리의 원리’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원리의 원리의 원리’도 생각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우리의 변화와 성장, 성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보다 상위의 원리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보다 높은 차원의 원리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적합한 모델을 골라낼 때, 제대로 된 것을 고를 수 있다. 물리학의 법칙과 같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들이 있다. 세상은 이러한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오직 인간의 변화에만 이러한 법칙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
“우리는 문제를 계속 반복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우리가 너무 우둔하여 해답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 켄 윌버 Ken Wilber

나는 지금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노트북을 올려 놓은 책상, 이것들은 일종의 구조물이다. 의자라는 구조물이 있어 나는 그곳에 앉을 수가 있고, 책상이라는 구조물이 있어 나는 그 곳에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의자와 책상은 각기 자기만의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모양에 맞추어 나는 앉을 수가 있고, 그 모양에 맞추어 노트북을 그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다. 의자의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피라미드 모양이라면 나는 그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다. 책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자나 책상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동안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의 모양에 의해 지배받는다. 의자와 책상이라는 구조물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의자가 우리를 거기에 앉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책상이 노트북을 거기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제 스케일을 좀 더 크게 가져가 보자. 이제는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방이다. 이 방에는 책장이 있고, 책상이 있고, 의자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적절하게 배치가 되어있다. 그러한 가구 배치는 또 하나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가구배치는 그 방 안에서 나의 동선을 결정한다. 같은 방안의 공간이지만 가구가 놓여있는 곳에는 내 몸을 들이밀 수가 없다. 나는 가구를 피해다녀야 한다. 가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는 내가 들어갈 수 없다. 가구의 배치가 나의 행동을 결정한다. 내가 있는 이 집은 어떠한가?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집은 어느 건축설계가에 의해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설계는 나를 포함해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수많은 주민들의 동선을 결정했다. 집이라는 구조가 나의 동선을 결정했고, 나는 좋던 싫던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수리가 가능하겠지만) 이미 주어진 구조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아파트라는 구조도 그렇다. 그것은 단독주택이 아닌 수많은 세대가 함께 사는 단지이다. 층수가 높다. 우리집은 12층이다. 나는 우리집을 들락거릴 때마다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해야만 한다. 이유는 하나이다.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책상이나 의자의 배치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구조이다. 아파트 내에서의 나의 행동은 그 그조로 인해 거의 영구적으로 결정된다.

의자, 책상, 집, 아파트는 우리 눈에 보이는 구조이다. 그것들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구조만 있을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구조는 없는 것일까? 인간은 참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인간처럼 변화무쌍, 예측불가능한 존재가 있을까도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행동에는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흔히 우리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변화가 그렇게 쉽다면 변화 때문에 고민하는 개인과 조직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항상 새롭게 변화하고 싶고, 두려움없이 도전하며 매일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도 돌아보면 매번 제자리 걸음인 것 같은 것이 또 인간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변할 수가 없는 것일까? 인간은 왜 반복적인 패턴을 보이며, 평생을 노력해도 그러한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아파트처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수 천 마리의 새들이 떼지어 날아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없으신 분을 위해아래 링크주소를 덧붙인다). 그 많은 새들이 동시에 같은 장소를 날면서, 단 한 마리도 부딪치지 않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물고기들을 어떨까? 물고기들 역시 수 천, 혹은 수 만 마리가 떼지어 다니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 그들 역시 단 한마리도 충돌사고를 내지 않는다(역시 링크주소를 덧붙인다). 언뜻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교통사고를 내는 인간 세상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움직임은 정말 예술의 경지라고까지 할 만하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그 많은 개체들이 마치 하나와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혹시 이들의 움직임에도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 혹은 구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행동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은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그 구조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평생을 가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지상에서 아파트 12층까지 단 번에 오를 수 없다. 그리고 확실치는 않지만, 인간이 변하고 싶어도 변화하지 못하고 평생 비슷한 패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의 존재에 아주 강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떼지어 나는 새들: http://www.youtube.com/watch?v=nffdc9sLYnY


떼지어 헤엄치는 물고기들: http://www.youtube.com/watch?v=_tGOKngtk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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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인생은 스포츠 경기와 같다. 인생이라는 경기에 참가한 인간들은 저마다 그 곳에서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친다. 어떤 사람은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어떤 사람은 평생 후보선수로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인생을 끝마친다. 축구에 비유를 해보자.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경기장이 필요하다. 축구의 모든 것은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경기장 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경기가 아니다. 축구장 양쪽에는 양쪽 편의 골대가 있으며, 가운데에는 양쪽을 가르는 중앙선이 있다. 축구장은 하나의 구조이다. 그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그 구조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경기장 밖에서 골대로 공을 차 넣는다한들 골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 구조를 무시하고서 경기를 펼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어겨서도 안된다. 그것을 어기는 것은 반칙이다. 축구경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훈련에 앞서, 이 경기장이라는 구조와 규칙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우리네 인생이 스포츠 경기와 같다면, 우리는 구조와 그것의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의 삶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명시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따라야 할 구조와 규칙들이 있다. 구조와 원리를 모르고 하는 게임, 그 게임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가 우리의 삶이라는 게임을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이 알고 있는 변화의 원리는 무엇인가?
당신이 지금까지 변화를 위해 삶에 적용해 온 방법들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었는가?
삶이 하나의 게임이라면 당신은 그 게임의 규칙을 제대로 알고 경기에 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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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직찾기/드림잡 코칭 후기

천직/1인기업 2010/05/13 21:09 Posted by 최코치

최근 10주간의 드림잡 코칭(천직찾기)을 끝마치신 고객님의 코칭후기를 공유합니다. 나이 및 실명, 전문공개를 허락받았습니다.

 

드림잡 코칭 후기

조정화님(29세, 여)

1. 코칭을 받게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 직장생활이 4년차에 접어들자 간간히 생겨나던 슬럼프가 극심해졌습니다. 일년내내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여기서 이 일만 하다가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인가 막막했습니다. 제 삶에서 ‘일’빼고는 불만족스러운게 하나도 없었는데,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일’이라는 것 때문에 제 삶이 완전히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코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분야라 고민을 좀 했지만, 중요한 건 제 자신이었기 때문에 절실한 마음으로 코칭을 받게 되었습니다.

2. 최코치를 선택한 이유는?
 - ‘나에게 맞는 천직 찾기’ 분야로는 최코치님만큼 전문성있고 열의를 가진 분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코칭을 받기전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포스팅을 접했는데 모든 글귀가 마치 ‘직업’ 때문에 고민에 빠진 저를 위해 쓰여진 글처럼 느껴졌고, 현실 안에서 ‘직업’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해석과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분이라면 과연 믿을 수 있겠다는 신뢰가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직접 만나뵌 다음에는 차분하시면서도 진정성 있게 저의 이슈에 접근해나가시는 모습에서 또 한번 신뢰를 가질 수 있었구요 ^-^

3. 코칭을 시작하기전의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 저의 목표는 두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나에게 맞는 직업’ 찾기였고 두번째는 ‘긍정적인 시각’ 되찾기였습니다. 긍정적인 시각이란, 제가 원치 않는 일로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잃어버린 ‘저의 자존감’, 세상 사람 모두 억지로 세운 의지로 겨우 일을 해나가며 사는 것으로 보이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두가지 목표 모두 이루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4. 10주차 과정을 마친 후 소감은?
 - 저에게도 삶에 대한 이런 평정심을 되찾는 순간이 올까 자못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횟수를 거듭할수록 ‘저 자신에 가까워 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저도 예상하지 못하고 기대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그게 바로 ‘코칭’의 핵심적인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저 자신에 점차 가까워지고, 내가 정말 잘하고 자신 있는 부분들에 대해 스스로 명료한 해답을 얻어가자 제가 원하는 직업은 자동적으로 도출이 되었습니다. 최지환 코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5. 코칭 전후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이 있다면?
 - 아무래도 저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29년 동안 끌어안고 산 몸뚱아리와 정신세계인데 그동안의 전 다른 사람이 해주는 말, 또는 제가 만족스러워 하는 제 모습으로만 저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추상적인 구름 형태로 뭉게뭉게 알아오던 제 모습이 코칭을 통해서 아주 선명하게 ‘난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다’라는 명제로 떨어짐을 느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집착하고, 분노하고, 얽매이는 ‘감정’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주변의 감사한 것들이 눈과 마음에 들어오고 세상 자체가 이제 다르게 보입니다 ㅎㅎㅎ

6. 추천의 말
-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을 가집니다. 그리고 일을 합니다. 그런데 소위 명문대를 나왔든, 대기업을 다니든 그 사람의 수준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채로 자기가 선택한 직업에 도달합니다. 그 다음에는 별 큰 만족없이 계속 일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또 그렇게 사는게 현실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코칭은 제가 알아왔던 세계에 대한 인식을 분주하게 살아가는 현실을 넘어 무한한 우주로 확장하고,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삶의 핵심 가치를 일깨워 그것에 맞게 살아가게 도와줍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 중요한 것은 코칭를 받는 자신이 그 과정에 충분히 몰입하고, 또 개인과제에 대해 열중하는 태도로 임해야 성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중 탁월한 코치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정말 현실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절대절명의 직업을 꼭 찾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최코치님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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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에 세멀바이스라는 산부인과 의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 병원은 분만실에 있던 여성들의 사망률이 끔찍히도 높았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근무했던 병동에서 출산하는 여성은 열 명 중 한 명이 죽어 나갔다. 어떤 산모는 이 병원에 가는 것이 두려워 길에서 아이를 낳기도 했으며, 입원한 산모들 중에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빌면서 제발 다른 병동으로 옮겨달라고 애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의사인 세멀바이스는 그 원인을 밝히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굳이 다른 병동과의 차이점을 들자면 세멀바이스의 병동에서는 의사들이 산파 역할을 하는 반면에, 다른 병동에서는 조산원들이 산파 역할을 한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의사가 산파 역할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외에는 병동의 모든 요소들을 다른 병동과 동일하게 만들어 결과를 살펴봤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세멀바이스는 다른 병원을 시찰하기 위해 4개월 동안 병원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놀랍게도 자신이 담당했던 병동의 사망률이 현저하게 감소해있었다. 그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연구에 몰입했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의사들의 시체 해부가 원인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가 근무하던 병원은 의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연구소를 겸하고 있었다. 의사들은 연구를 위해 틈틈이 시체를 해부하며 연구와 치료를 병행했다. 그것이 원인이었다. 당시에는 세균에 대한 개념이 없어 의사들이 시체를 만진 손을 씻지도 않은 채 산파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당시 산모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산욕열'이라는 병으로, 의사들의 손에 묻은 세균이 주원인이었던 것이다. 세멀바이스는 다름 아닌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의사들의 손에 묻은 세균이 환자들에게 전염되고 있음을 알리고 의사들이 손을 씼는 것을 필수원칙으로 하는 방침을 제정했다. 그 후 산모들의 사망률은 1%로 감소했다. 의사들은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치료했건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히려 그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에서는 어떠할까? 살면서 나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한 짓들이, 나와 그들의 인생에 치명적인 해를 미쳤던 일은 없었을까? 나도 모르게 그런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내가 여지껏 그렇게 살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면, 더 나아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면 생각해보면 괜히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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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의 전환에 불을 붙인 경영자들은 버스를 어디로 몰고 갈지 먼저 생각하고 난 다음에 버스에 사람들을 태우지 않았다. 반대로 버스에다 적합한 사람들을 먼저 태우고(부적합한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난 다음에 버스를 어디로 몰고 갈지 생각했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을 넘어..>를 보면 '사람 먼저, 다음에 할 일' 이라는 챕터가 있다. 위대한 기업을 영속한 회사들은 하나같이, 무엇을 할지를 따지기 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이다. 적합한 사람들을 적합한 자리에 앉히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원칙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목숨걸고 지켜야할 원칙 중에 원칙이었다. 그들의 원칙은 언뜻 들어도 충분히 수궁이 가는 말이다. 어쩌면 너무나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기준을 나 자신에게 들이댄다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가히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살 떨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러한 기준을 남에게 들이대건, 아니면 내가 그 기준을 적용받는 대상이 되건 둘다 마찬가지이다.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엄격함 이다.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면 과감히 버스에서 내리라고 말해야 했으며, 적합한 사람은 절대 떠나지 못하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적합한 사람들만이 올라탄 그 버스는 엉뚱한 곳으로 갈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이런 엄격함을 엄격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정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런 엄격함을 적용하는 사람들은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인정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엄격함은 비정함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이 둘을 혼돈하는 경향이 있다. 명확한 분별을 하지 않아, 엄격함을 비정함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엄격함이 없는 곳에서는 모두가 피해자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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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포인트는 버스를 어디로 몰고 갈지 생각하기에 앞서 적합한 사람들을 먼저 버스에 태운다는(그리고 부적합한 사람들을 버스에서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핵심 포인트는 기업을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키우기 위해 사람을 판별할 때 요구되는, 가차없는 엄격함의 정도이다.

우리 역시 어떤 버스를 타고 산다. 그 버스가 반드시 회사일 필요는 없으니, 사람에 따라서는 여러 대의 버스를 타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탄 버스, 그 버스에 당신은 정말 필요한 사람인가? 정말로 적합한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어떨까? 그 질문을 던지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있다. 내 느낌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yes 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남들에게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에게 칼같은 엄격함을 들이댄다는 것은 왠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물어봐야 한다. 그 버스가 가려는 목적지가 내가 가려는 곳과 다를 뿐더러, 내가 그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가 되는 일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에게도 손해, 다른 사람에게도 손해.

나 스스로 내가 속한 모든 조직에서 '나는 적합한 사람인가?'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묻고 또 물어 본다. 대답에 명료함이 서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있다. 물론 엄격함을 가진 사람에게 말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내가 속한 조직에 야금야금 피해를 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자라고 무능력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타야할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를 탓기 때문에 말이다. 내가 그저 눈을 슬쩍 감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며 안심하고 가슴 쓸어 내릴 일이 아니다. 내가 타지 말아야 할 버스는 시간이 아무리 지난다 해도 내가 탈 버스로 변하지 않는다. 계속 모른다면, 혹은 모른척 한다면 의사 세멀바이스처럼 조직과 자신을 위해서 뭔가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결국 조직도 자신도 세균에 감염시켜 중병에 들게 만드는 크나큰 우를 범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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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오픈코칭데이를 진행합니다.

알림 2010/03/19 11:30 Posted by 최코치



제1회 오픈코칭데이 행사를 진행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코칭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코칭은 대중에게 낯선 단어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는 사람들조차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픈코칭데이는 오픈코칭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더 많은 분들에게 코칭을 알리고, 진짜 코칭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개념의 코칭 이벤트입니다. 코칭의 본질은 인간의 존재 그대로 사는 것, 자연스러움에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것 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코칭은 더 많은 분들과 더 쉽게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코칭을 얘기하고, 코칭을 경험하고, 코칭을 즐기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기대합니다.

 

| 오픈코칭데이란?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서 전문코치들이 코칭의 파워를 경험하기 원하는 대중에게 1:1개인코칭세션을 제공하는 코칭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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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코칭을 직접 경험해보길 원하는 분 누구나


| 언제/어디서/어떻게?

일시
2010년 4월 4일(일) 오후 1시 30분 ~ 5시 30분
장소 강남역 성공을 도와주는 가게 (www.successshop.co.kr)
신청 비용 입금 후 예약 (예약 필수)
비용 22,000원 (현장결제 시: 33,000원, 대기 중인 코치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
계좌 우리은행 1002-741-501155 (예금주 : 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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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의 3가지 전제:
셋째, 잠재력을 발휘하고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앞 서 다루었던 코칭의 첫 번째, 두 번째 전제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경계라고 표현한 이원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무게가 나가는 어찌보면 다소 심각한 주제들이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전제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이 말은 언뜻 보면 앞에 했던 말과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으며, 해답 또한 모두 그 안에 있는데 또 무슨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과거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면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코치들이 먹고 살기 위해 갖다 붙인 말이 아닌가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고 한다. 이 말은 코치들이 자신들의 필요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이는 코칭이 무엇인지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생각일 뿐이다. 이 세 번째 전제에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그렇다고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에 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

코치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중의 하나인(이건 단지 필자의 생각임)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은 자기기만이라는 주제를 상자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하여 우리가 삶에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엄청난 실수들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상자를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주 그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말이다. 중요한 점은 상자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상자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비유적으로만 생각해보다라도 상장 안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은 잠재력을 맘껏 발휘하며, 자신의 원하는 탁월한 삶을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보다 우선적으로 자신이 상자 안에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 그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고도의 자기 인식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스스로 자신이 상자 안에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살아간다. 그 집단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사고방식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 살아도 좁지 않을 만큼 커다란 상자를 만들어내게 된다. 잠재력에 대한 상자, 가능성에 대한 상자, 행복에 대한 상자, 성공에 대한 상자가 모두 존재한다.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 안에서 상자 밖의 세상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상자 밖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외국인의 눈에는 낯선 것으로 비춰지는 것과 같다. 앞선 글에서 말했던 경계로 말해보자면, 경계를 긋고 그 중 한 쪽의 입장을 택한 상황이라면 다른 쪽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자신의 허물은 물론이며, 자신이 가진 좋은 것들조차도 볼 수 없게 된다. 스스로 지금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관찰구조도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관찰할 수는 없다. 개인은 세계를 지각하고 해석하는 어떤 것으로서 그 수준의 구조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개인은 그런 구조들 자체를 전체적으로 지각하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상위수준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각각의 해석과정은 보지만 보여지지 않고, 해석하지만 그 자체가 해석되지는 않으며, 억압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억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켄 윌버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세상을 본다. 나의 잠재력을 보고, 세상의 무수한 가능성을 보고, 널려 있는 가능성을 본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을 볼 수는 없다. 무엇이든 관찰하는 주체는 자신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단적으로 말하면,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은 보고, 무엇은 못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그가 보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이 그에게는 진실이다. 상대방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내 눈에는 쉽게 보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가능성과 기회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세상에는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택의 기회를 보기는 커녕 지금 이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기 일쑤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결코 보지 못하는 곳이 있는 것은 아닐까?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흔들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큰 성공과 부를 성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분명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볼 수 없는 세상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코치는 다른 관점에서 업무를 바라보고 이를 코치 입장에서 설명하여 함께 문제 접근 방식을 의논하는 것이다" - 에릭 슈미트.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코칭을 받아보라는 소리를 처음 듣고 서는 화를 냈다고 한다. 자신처럼 일을 잘하는 사람이 무슨 코치를 받느냐는 생각에서 였다. 이는 코칭이 무엇인지, 코치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 우리는 어디가서 코칭을 좀 받으라는 말을 들으면 에릭 슈미트가 이해한 뜻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대부분 그런 뜻으로 말한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는 코칭 경험하고, 코치의 필요성을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관련 영상을 이안나 코치님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http://coachingisland.com/257) 코치가 하는 일은 어디로 가라고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이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앞만 보고 가는 고객이 뒤도 보고, 옆도 보고, 위, 아래를 쳐다 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가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곳을 보는것, 그것이 바로 가능성과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다. 예전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파트너로서의 코치가 필요한 것이다. 결코 몰랐던 세상, 몰랐던 차원이 존재함을 깨닫기 위해서 코치라는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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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의 3가지 전제:
두번째, 문제의 해답은 바로 문제를 지닌 그 사람 내부에 있다.

몇 년 전인지 모르겠다. 전 국민을 흥분시켰던 드라마 한 편이 떠오른다. 박신양, 김정은 주연의 파리의 연인. 1회를 보고나서 재미있다 싶으면, 결국 전 편을 다 보고 말아야하는 몹쓸 습관이 있었던 나는 그 드라마 역시 전 편을 다봐야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회에는 예상치 못했던 참으로 아리송한 결말에 큰 허무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드라마였다. '애기야~'를 연신 외쳐대며 핑크 돼지 저금통을 들고 브라운관을 누비던 한기주(박신양)의 멋드러진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드라마에서 최고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형수가 될 태영(김정은)에게 품어서는 안될 마음을 품었던 한기주의 동생, 윤수혁(이동건)의 고백장면이 아닐까? 그 장면에서 그가 태영에게 던진 기가막힌 대사 한 마디는 당시 대한민국 뭇여성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리기에 충분했었다. 바로 '이 안에 너 있다'.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대며 그런 엄청난 멘트를 날리던 그의 모습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매력적이기 그지 없었다. 한 동안 그 한 마디는 전국민적인 유행어였었음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코칭이라는 것을 안지 얼마되지 않아 이 대사 못지 않게 기가 막힌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코칭의 3가지 전제 중 그 두번째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가 그것이었다. 어찌보면 뻔한 말인 것 같으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아리송하고 어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만 같은 오묘한 문장이었다. 어쨌든,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내 안에 있다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 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물론이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가슴 뛰게 만드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 문제는 나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 혹은 환경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 또는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말해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생긴 문제라면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그러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고, 그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원인이 되어버린다. 이는 모든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은 당신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 안에 해답이 있으니,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대단히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코칭에서는 이렇게 문제의 답은 내 안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먼저 이 두번째 전제에 대한 나 자신의 이해의 과정을 함께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전제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들은 설명은 바로 인간의 무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매순간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방대한 향의 정보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에 쌓아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바다 위에 떠있는 빙산에 비유된다. 바다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빙산의 일각을 우리의 의식에, 그리고 바다 속에 잠겨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밑부분을 흔히 우리의 무의식에 비유한다. 그 무의식의 영역은 무한한 정보와 잠재력이 저장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코치는 그 사람이 스스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코치는 그것을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이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그 거대한 무의식에서 건져낼 수 있도록 말이다. 코칭을 통해 그곳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찾는 '해답'이다. 이러한 설명 또한 매력적이었으며 큰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칭을 직업으로 삼은 나로서는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 전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할 때, 먼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곧바로 해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 한시라도 빨리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항상 답을 찾는 것에만 혈안이 되기 쉽다. 우리는 학창시절 선생님께 자주 듣던 말이 하나 있다. 수 많은 시험을 볼 때마다 매번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바로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 답은 항상 문제 속에 있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답을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와 답은 입자와 파동의 모습을 함께 지닌 소립자와 같이 인간에게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진 하나인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답을 찾아 나서기 이전에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문제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 의미도 가능하면 껍질을 벗길대로 벗겨 가장 속 알맹이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문제라는 것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문제는 항상 밖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내 안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 안의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이것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말이다. 관점은 곧 입장을 만들어낸다. 입장은 경계의 양쪽 중 하나를 선택함에 의해서 발생한다. 결국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을 찾는다는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입장을 놓아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을 놓아버림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입장 혹은 다른 관점을 취하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다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일 뿐, 놓아버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오로지 관점의 전환만을 외쳐댄다). 이는 곧 그러한 관점을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의 해답도 결국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고 있는 내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궁극의 해답은 결국 나도 모르게 그어져 있던 경계를 포기하는 것, 경계를 통해 갖게 된 나의 관점을 놓아버리는 것 뿐이다. (짧은 글로 핵심을 전하려 하다보니 양적인 설명이 부족함을 느낀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설명을 원한다면 켄 윌버의 '무경계' 또는 '의식의 스펙트럼'을 읽어보길 권한다)

경계를 지키면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며, 그 상태는 그저 문제의 일시적인 해결, 또는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와 관련된 다른 문제가 바로 뒤따라오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겪는가? 취업난으로 취직이 그 옛날 장원급제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지만, 이상하게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간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나올 날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나서는, 나중에 그 직장을 떠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 돈을 내고 코칭을 받는다. 이런 상황은 삶에서 수도 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로 우리가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진짜 해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한참 뒤늦게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완전한 탈출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근본적인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씨앗은 결국 내 안에 있는 사랑하는 그녀가 아닌, 경계이다. 그것이 곧 내 안에 있는 유일한 문제이자, 동시에 유일한 해답이 아닐까? 문제와 해답이 모두 내 안에 있음을 진정으로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필요가 있다.

p.s: 그리고,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그 명장면을 다시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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