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네..선생님?
데이지 퓰러양이요
잠시만요
앉아계세요


때떄로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충돌 코스에 놓인다
우연이거나 혹은 필연이거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파리에 한 여자가 쇼핑하러 가는 길이다
근데 코트를 두고 왔다.그래서 다시 되돌아 간다
코트를 가지러 가는 사이에 전화 벨이 울린다
그래서 잠깐 동안 통화를 한다
여자가 전화를 하는 동안
데이지는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발레 리허설을 하고 있다
리허설 동안..그 여성은 전화를 끊는다
그녀는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는다
막 택시기사는 돈을 좀 일찍 벌어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다
반면에 데이지는 여전히 연습 중이다.
아까 돈을 일찍 벌어서
커피 한잔까지 마신 택시기사는
쇼핑가려던 그 여자를 태웠다
좀 전에 택시를 놓친 그 여자를...
그 택시는 길을 건너던 남자 때문에 갑자기 멈췄다
그 남자는 평상시보다 5분이나 직장에 지각을 했다
왜냐하면 알람 맞추는 것을 까먹어서 이다
남자가 5분 늦게 지각하는 동안
데이지는 리허설을 끝내고 샤워를 하고 있었다
데이지가 샤워를 하는 동안 택시는 부티크 앞에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는 물건을 찾으려는데 아직 포장이 않되어 있었다
왜냐면 물건 포장하는 소녀가
지난 밤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우는 바람에 까먹은 것이었다
포장이 끝나고 여자가 택시로 돌아왔을 때
배달 트럭이 길을 막고 있었다
데이지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동안
트럭이 비켰고 간신히 택시가 출발 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데이지가 코트까지 입고나서
신발 끈이 풀린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가 신호에 걸려서 기다리는 동안
데이지와 친구는 극장 뒷문으로 나왔다

만약 이 때 하나만 달라졌다면..
친구의 신발끈이 잘 묶여져 있었든지
아니면 배달 트럭이 좀 더 빨리 배달을 했던지..
아니면 소녀가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아서 포장이 준비되어 있었다면
아니면 남자가 알람을 제 때 맞춰서 일찍 일어났다면
아니면 택시 기사가 커피를 마시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여자가 코트를 잘 챙겨 왔더라면..
아니면 여자가 코트를 잘 챙겨 왔더라면..
택시를 좀 더 빨리 탔을 것이고...
데이지와 친구는 길가를 잘 건널 수 있었을 것이다.
택시 역시 잘 지나가고..

하지만 인생이란 게 이런거다..
교차되는 삶과 우발적인 사건들의 연속...
누구도 제어를 할 수 없는..

택시는 잘 지나가지 못했고
택시 기사는 잠깐 딴짓을 했을 뿐이고..
택시는 데이치를 치었다.
데이지는 다리를 다쳤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에는 위와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 영상을 구할 수 없어서 벤자민(브래드 피트)의 대사만 옮겨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의 하나였습니다. 주인공 벤자민이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는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데이지를 찾아간 벤자민이 면회하길 기다리며 하는 독백이죠. 그 사고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된 것인지, 그 사건이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던 몇몇 사람들의 정황을 들려줍니다. 꼭 그 장면을 보지 않더라도. 이 대사만 보고서도 참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연처럼 보이는 수많은 사건들의 결과입니다. 며칠 전 만나기로 약속된 고객 분께서 갑작스런 일로 약속을 취소하셨습니다. 다음 약속이 있어 뜻하게 않게 스케줄에 구멍이 났습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중 근처에 극장이 있어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빨리 시작하는 영화를 골랐습니다. 마침 5분 후에 시작하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그 고객분께서는 또 저와 약속을 취소하게 된 이유가 있으셨을 겁니다. 그렇게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무엇이 진짜 원인인지, 그 사건이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수가 없게 됩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삶을 운명이라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연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을 통해 본 데이지의 교통사고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화 속에서 말하듯 이 수많은 사건들 중에 단 하나만이라도 일어나지 않았거나 다른 경우가 생겼다면 그녀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건들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일어난 것은 운명일까요? 우연일까요?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이 상황들은 운명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우연이라고 하기도 어려워보입니다. 그런데 또 우리의 삶은 온통 이러한 일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그녀가 사고난 원인 또는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을까요? 현실에서야 당연히 택시기사이거나 그녀이거나 둘 중 한명의 책임으로 몰고갔을 겁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고난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보면, 우리의 삶이 무질서하면서도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건들을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우연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삶에만 영향을 미치지도 않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나의 작은 선택 하나가 다른 어느 누군가에게 어느정도의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우리는 모두 이렇게 하나인것처럼 연결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마치 하나의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시스템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과연 이 세상은 어떤 질서가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 프랙탈 이미지 출처 : [1] [2]

코치가 본 영화 <굿 윌 헌팅>

코칭/자기계발 2009/02/09 21:00 Posted by 최코치


이 영화를 꽤나 여러번 봤었다. 처음 본 이후로 뜬금없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졌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유없이 이 영화는 자꾸 내 기억속에서 떠오르길 반복했었다. 내가 꽤나 좋아했었던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어느 영화에서든 꽤나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는 맷 데이먼 때문이었을 것이고,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지만 그러한 능력에 걸맞는 삶을 살지 못하는 주인공의 안타까운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빈민가에서 그저 하루하루는 힘겹게 먹고 살아가고 있는 윌. 그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언제나 먼저 그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가게 만드는 사람이다. 자신의 주위에 아주 단단한 벽을 치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3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보잘것 없는 인생이었다. 영화는 바로 윌의 이 단단한 벽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천재였다. 아무도 풀지 못하는 수학문제를 풀 수 있었으며, 세계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인 램보 교수로 하여금 혀를 내두리게 할 정도로. 램보교수는 그런 윌의 가치를 알아본다. 그리고 윌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맘껏 발휘하며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윌은 그의 뜻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는다. 램보 교수는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넘어갔다. 윌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 단단한 벽의 존재를 무시했다. 그저 그것은 약간의 노력으로 허물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능을 인정받아 돈과 명예를 얻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것은 허물어 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그것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쉽게 허물 수 없었다. 마치 작은 변화에서 힘들어하고,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가려라고만 하는 우리들처럼 말이다.

 


램보는 탐탁치는 않아도, 윌을 맡을 적임자라 여겨지는 숀에게 윌을 보낸다. 하지만, 숀에게도 역시 윌은 만만치 않다. 둘은 서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서로를 비웃으며 서로에게 욕을 퍼붓기도 한다. 윌은 숀의 가슴 속 상처를 건들고, 숀은 윌을 어린애라 비웃는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숀은 윌의 가속 속 벽을 건드린다. 윌 역시 자신 안에 있는 그 벽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간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두려움 때문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길 거부하는 윌. 윌의 친구는 말한다. 떠나라고. 지금의 삶을 벗어던지고 떠나라고.... 진심어린 친구의 충고이며, 부탁이었다. 윌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의 탈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날 생각을 하게된다.


윌의 가슴 속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결국 그것은 한 사내의 커다란 울음과 함께 허물어진다. 그의 가슴을 허문 것은 숀의 한 마디였다. "It's not your fault". 열 번이 넘게 반복된 이 한 마디가 평생을 가슴 속에 두고 살았던 벽을 결국 허물었다. "It's not your fault". 나 자신에게도 되뇌인다. 이 말은 힘이 있다. 나 자신을 용서하고, 인정하는 말이다. 자신과의 화해, 자신에 대한 용서, 자신에 대한 인정.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은 이런 것인지 모르겠다. 또 몇 달이 지나면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다. 코치가 되어 다시 본 이 영화는 내 가슴 속에서 이전보다 훨씬 큰 울림을 남겼다.



배우 맷 데이먼 역시 하버드를 다녔던 수재이다. 이 영화는 그가 재학 중에 썼던 50페이지 분량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친구이자 역시 유명 배우인 벤 애플렉(Ben Affleck)과 함께 영화 각본으로 완성하였다. 벤 애플랙은 이 영화 속에서도 역시 윌의 절친한 친구로 등장한다. (위의 사진들 중 맥주캔을 들고 있는 사진). 영화는 1998년 제70회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각본상을 받았으며 숀으로 열연한 로빈 윌리엄스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SF 영화의 명작, 터미네이터4의 포스터
특이하게도 플래쉬로 제작한 Motion Poster를 선보였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

책/영화/웹 2008/10/20 21:19 Posted by 최코치


행복추구권. 교과서에서 본 후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던 단어 하나를 영화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인간에겐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그 평범한 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켜낸 한 남자의 이야기,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리고 누구나가 말하는 행복(Happiness)이 아닌 그 자신만의 행복(Happyness)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 크리스는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어디 그만도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 없기야 하겠는가 마는 영화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조차도 그의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골밀도 측정기라는 기계를 팔기 위해 하루종일 발품을 팔지만 잘 되지 않는다. 견인된 차를 찾을 돈도 없다. 아내는 결국 생활고를 못 견디고 그의 곁을 떠난다. 집세를 못내 자그마한 몸집의 아들을 재울 작은 공간마저도 잃고 만다. 14달러를 빌려 준 친구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큰 소리를 쳐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답답한 마음 뿐이다. 집에서 쫓겨나 갈 곳을 잃어 결국 하루밤을 전철역의 화장실에서 보내며 흘리는 그의 눈물에서 행복의 실마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자신의 권리를 훌륭히 지켜낸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결국 그 자신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가 자신의 훌륭한 코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멋진 차를 타고 나타는 낯선 이에게 "주말엔 내 차를 써도 되지만, 월요일엔 돌려줘야해요"라며 멋지게 자신을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주위엔 다들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해 보이지만, 자신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왜 나는 그렇게 될 수 없을까?"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그였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이었다. 수치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아슬아슬 위태롭지만, 결국에서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상황을 반전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약하고 평범한 모습 속에서 언뜻언뜻 희미한 영웅의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다시 본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책/영화/웹 2007/12/20 10:19 Posted by 최코치

Good Will Hunting.

Will Hunting은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고 우리말로 하자면 '좋은 윌 헌팅'이니, 우리나라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같은 형식의 제목이다. 물론 이 외에는 두 영화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 ^^

1997년에 나온 영화이니, 이제 벌써 10년이 된 오래된 영화이다.

난 정확히 언제 처음 봤는지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이미지들을 나의 기억속에 남기며 사라질 만하면 다시 떠오르길 반복했던 영화이다.

가끔씩 나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라는 것.

제이슨 본 시리즈의 강인함 보다는 왠지 풋풋함이 느껴지는 맷데이먼.

지금은 스타가 되어버린 벤애플랙의 털털한(?) 연기.

영화 속에서 오랜만에 다시 봤던 로빈윌리암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건 우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한 천재의 모습이었다.

천재성과 암울한 인생은 공존하는 것인가?

'달과 6펜스'의 모델이 된 고갱의 삶이 그러했고,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의 삶이 그러했다.

또, 얼마 전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향수'의 향수 천재 장바티스트 그루누이의 삶은 어떠했는가.


이미지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mohitdhawan/15629439/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건,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천재가 왜 그러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가였다. MIT의 촉망받는 교수마저도 우습게 보는 그가 도대체 왜?

사람에 대한 두려움.

세상에 대한 두려움.

사랑과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의 천재성으로도 이런 두려움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그것은 수학으로 풀 수 없는 문제이기에.

사람으로 인해 생긴 이러한 두려움들을 허물어 준 것 또한 결국 사람이었다.

숀맥과이어 박사의 사랑과 관심으로 두려움의 방을 나와 사랑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또 다시 시작되는 10년 동안 가슴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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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ststeve/69801104/ (영화 속에서 맷데이먼과 로빈윌리암스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Good Will Hunting Be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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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꿈도 없이, 희망도 없이, 목표도 없이.

즉,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눈뜨면 하루를 시작하고,
눈 감으면 하루를 마무리 하던 시절

그 때 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단 하나.

포스터 속의 한 마디.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라는 이 말이 내 마음에 꽂혔다.

어느 분이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최고의 영화광고카피였으며 정말 내 마음을 통째로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분명 그 당시 삼류인생을 살고 있었던 나.

나에겐 사랑도 없었는데, 최민식 아저씨는 사랑이라도 가졌다고 하니, 동병상련의 느낌 반,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은 마음 반 이었을까?

영화를 처음 본 것이 2001년이니, 시간이 꽤 흘렀다.

그 동안에도 문득 내 인생이 삼류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책상 어딘가에 쳐박아 두었던 파이란과 이강재(최민식)를 찾았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오늘 또다시 이강재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누가봐도 삼류인생을 살고 있는 강재.

삼류, 쓰레기, 호구, 찌질이 이런류의 온갖 수식어들을 달고 다니는 강재.

위장결혼으로 강재의 아내가 된 파이란.

한 번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녀의 남편이 되어준 강재를 사랑하게 되는 파이란.

그렇지만,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강재는 변화하게 된다.

비록, 삼류에서 갑작스레 일류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파이란이 죽기 전에 그에게 남긴 편지 한 통을 통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본 그녀의 사랑을 통해서 적어도 삼류인생은 벗어나게 된다.

결국 강재의 죽음으로 영화 속에서의 강재는 영원한 삼류로 남았지만,관객에게는 가슴아픈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나는 한 남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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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고, 강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돈이나 명예는 커녕 그에게 있는 것이라곤 몸뚱이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존심 뿐이다.

그가 큰 소리 칠 수 있는 상대라고는 고작 오락실에서 그에게 자리 비켜달라고 엉기다 호되게 맞는 학생 정도 뿐이다.

친구도 후배도 하다못해 동네 아줌마도 그를 만만하게 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 강재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런 강재의 모습이 어쩌보면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사는 모습은 모두 제각각 이겠지만, 항상 살아가고 싶지 않았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

우리의 꿈과 현실과의 차이로 인해서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강재의 모습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어둠의 세계에 함께 입문한 동기이자 강재의 보스인 용식(손병호)은 강재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이 바닥 체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배짱도 없고, 마음도 여려터진 사람이니 그 바닥에서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뭐가 다른가.

그저 우리 자신과 맞지도 않는 옷을 걸친 채,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되기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며 하루하루 자신을 더 괴로움의 수렁으로 몰아가고 있다.


강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꿈 하나.

배 한척 살 돈을 마련해, 고향에 내려가 고기 잡으며 사는 것.


이 꿈 하나를 위해 마지막으로 자신의 10년을 대가로 치르기로 마음 먹지만, 이 역시 잘못된 선택임을 파이란의 편지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영화 내내 최민식은 진정 이강재인 듯 리얼한 연기를 보이지만, 역시 이 영화의 명장면은 부둣가에서 파이란의 편지를 읽으며 오열하는 강재의 모습니다.

언제봐도 가슴 뭉클한 그 장면, 그 순간을 통해 강재는 행복을 알게되고, 자신을 알게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진정 행복을 느끼기가 참 힘들다.

행복의 절대적 기준이 없는 만큼, 또 누구나 쉽게 행복해 질 수도 있는 것이건만,

정작 우리는 남들에게 일류로 인정받는 것만이 인생 최고의 가치 인듯 살아가고 있다.


삼류인생을 살다 간 한 건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듯한 이 영화 '파이란'. 그래서 참 매력적이다.


개인적으로 송해성 감독은 '파이란'이후 이 만한 작품을 내놓고 있진 못하지만, 여전히 작품소식이 있을 때마다 기대가 되는 감독이긴 하다.


또한 지금보면 참 풋풋해보이는 공형진과 요즘 많은 영화에서 빛나는 조연으로 활약하고 있는 손병호, 김해곤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