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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4 코칭의 3가지 전제, 그것의 진짜 의미 (4)
  2. 2010/02/27 코칭의 3가지 전제, 그것의 진짜 의미 (2) (2)

코칭의 3가지 전제:
셋째, 잠재력을 발휘하고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앞 서 다루었던 코칭의 첫 번째, 두 번째 전제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경계라고 표현한 이원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무게가 나가는 어찌보면 다소 심각한 주제들이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전제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탁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이 말은 언뜻 보면 앞에 했던 말과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으며, 해답 또한 모두 그 안에 있는데 또 무슨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과거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면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코치들이 먹고 살기 위해 갖다 붙인 말이 아닌가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고 한다. 이 말은 코치들이 자신들의 필요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이는 코칭이 무엇인지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생각일 뿐이다. 이 세 번째 전제에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그렇다고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에 관한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

코치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중의 하나인(이건 단지 필자의 생각임)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은 자기기만이라는 주제를 상자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비유하여 우리가 삶에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엄청난 실수들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상자를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주 그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말이다. 중요한 점은 상자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상자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비유적으로만 생각해보다라도 상장 안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은 잠재력을 맘껏 발휘하며, 자신의 원하는 탁월한 삶을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보다 우선적으로 자신이 상자 안에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 그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고도의 자기 인식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스스로 자신이 상자 안에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살아간다. 그 집단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사고방식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 살아도 좁지 않을 만큼 커다란 상자를 만들어내게 된다. 잠재력에 대한 상자, 가능성에 대한 상자, 행복에 대한 상자, 성공에 대한 상자가 모두 존재한다.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 안에서 상자 밖의 세상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상자 밖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외국인의 눈에는 낯선 것으로 비춰지는 것과 같다. 앞선 글에서 말했던 경계로 말해보자면, 경계를 긋고 그 중 한 쪽의 입장을 택한 상황이라면 다른 쪽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자신의 허물은 물론이며, 자신이 가진 좋은 것들조차도 볼 수 없게 된다. 스스로 지금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관찰구조도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관찰할 수는 없다. 개인은 세계를 지각하고 해석하는 어떤 것으로서 그 수준의 구조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개인은 그런 구조들 자체를 전체적으로 지각하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상위수준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각각의 해석과정은 보지만 보여지지 않고, 해석하지만 그 자체가 해석되지는 않으며, 억압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억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켄 윌버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세상을 본다. 나의 잠재력을 보고, 세상의 무수한 가능성을 보고, 널려 있는 가능성을 본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을 볼 수는 없다. 무엇이든 관찰하는 주체는 자신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좀 더 단적으로 말하면,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은 보고, 무엇은 못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그가 보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이 그에게는 진실이다. 상대방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내 눈에는 쉽게 보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가능성과 기회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세상에는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택의 기회를 보기는 커녕 지금 이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기 일쑤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결코 보지 못하는 곳이 있는 것은 아닐까?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흔들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큰 성공과 부를 성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분명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볼 수 없는 세상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코치는 다른 관점에서 업무를 바라보고 이를 코치 입장에서 설명하여 함께 문제 접근 방식을 의논하는 것이다" - 에릭 슈미트.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코칭을 받아보라는 소리를 처음 듣고 서는 화를 냈다고 한다. 자신처럼 일을 잘하는 사람이 무슨 코치를 받느냐는 생각에서 였다. 이는 코칭이 무엇인지, 코치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 우리는 어디가서 코칭을 좀 받으라는 말을 들으면 에릭 슈미트가 이해한 뜻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대부분 그런 뜻으로 말한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는 코칭 경험하고, 코치의 필요성을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관련 영상을 이안나 코치님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http://coachingisland.com/257) 코치가 하는 일은 어디로 가라고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이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앞만 보고 가는 고객이 뒤도 보고, 옆도 보고, 위, 아래를 쳐다 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가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곳을 보는것, 그것이 바로 가능성과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다. 예전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파트너로서의 코치가 필요한 것이다. 결코 몰랐던 세상, 몰랐던 차원이 존재함을 깨닫기 위해서 코치라는 파트너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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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의 3가지 전제:
첫번째,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코칭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 분야의 공통된 전제이기도 하다.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 그것을 계발하기 위해서 애쓸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당신은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 또는 느낌이 드는가?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반발을 했다. 누구나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끄집어 내어 쓸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또는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한 번도 써본적이 없어서 확신은 못하겠다. 있다고는 말하지만 사실 없을지도 모른다 등등. 이와 같은 말들을 많이 들었다.

'나도 정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우선 여기서 말하는 잠재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잠재력이 왜 무한하다고 말하는 것인지 그 의미에 대해 우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들을 보면 '당신은 무한한 잠재력이 있으니, 그걸 믿고 저질러라'라고 외치지만, 정작 그 잠재력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열정? 용기? 끈기? 의지력? 천재성? 그 잠재력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잠재력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는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그 잠재력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 즉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 물론 몸뚱이만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먼저 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몸은 여러가지 요소들로 구성이 된다. 뼈와 관절이 있고, 장기가 있고, 혈관도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세포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들은 또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인간의 몸은 다른 물질들과 그 구성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분명 인간은 물질 그 이상의 존재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The Great Chain of Being. 존재의 대 사슬, 이름도 거창한 이 그림은 내가 진정으로(곱하기 100을 해도 좋을 만큼) 존경하는 켄 윌버의 책에 자주 등장한다. 이 그림을 잠깐 설명하려 한다. 간단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탁월한 도해이다. 가장 안쪽의 원은 물질Matter을 뜻한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물질을 연구하는 학문은 바로 물리학Physics이다. 그런데 인간은 분명 물질 그 이상이다. 인간에게는 바로 생명Life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생명을 가진 물질이다. 그리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생물학Biology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파리도 모기도 아메바도 생명을 가진 물질일텐데, 인간이 그들과 같은 수준일리는 없을테니 말이다.

인간에게는 마음Mind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생각하고 느낄 줄 아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심리학Psychology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한발짝 더 나아간다. 인간에겐 바로 쏘울Soul, 영혼이 있다. (힙합 가수들이 흔히 "그 친구는 쏘울이 있는 친구야"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 그 쏘울과 이 쏘울이 같은지는 모르겠다) 눈에 결코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은 분명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은 신학Theology이다. 그런데 이것로도 부족하다. 끝으로 한 단계가 더 있다. 바로 정신Spirit이다. 이 정신은 앞서 논의한 모든 것의 근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긴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한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보자면, 인간은 모두 5가지의 차원을 지닌(혹은 차원에 속한) 존재이다. 차원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각 수준이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과 생명을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생명이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을 필요로 한다. 몸이 없는 인간이 있을리 없을테니 말이다. 혹은 있다한들 그를 인간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물질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만, 단순히 물질의 합이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물질이 모여 창발을 일으키고, 물질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생명체이다. 생명은 물질의 합 그 이상이다. 바로 그 이상이라는 것은 '초월'을 뜻한다. 초월은 하위 단계를 포함하면서 그 이상의 수준으로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생명은 물질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 차원을 넘어 5개의 차원을 안고 있는 존재이다.

이제야 우리가 본래 생각하려 했던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 볼 때이다. 각각의 차원에 있는 존재는 모두 그들 고유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물질의 차원에 속하는 원자 하나에도 얼마나 큰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는지는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2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생명의 차원에 있는 존재 역시 그들 나름대로 생명력이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마음은 어떠한가? 우리의 생각, 감정이 어떠한 힘을 갖는지 보고 싶다면, 유명한 6부작 다큐멘터리 '마음'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음'은 책으로도 출간되어 있다) 이정도까지만 이야기하면 이제 서서히 새로운 단어하나가 눈에 띠기 시작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바로 에너지이다. 우리가 가진 잠재력은 바로 이 에너지라는 키워드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며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면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한다. 그 에너지는 단지 육체적인 힘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인정할 것이다. 정확히 말로 뭐라할 수 없어도 분명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은 자신이 위의 5가지 차원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대부분 영혼의 단계이거나 마음의 단계에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살아갈 것이다. 자신을 그저 생명이 있는 몸뚱이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연료(먹을 것)만 채워지면 그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건 상관없이 우리는 존재의 대 사슬의 전 영역에 걸쳐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영역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인 에너지, 그 모든 에너지가 바로 우리가 가진 잠재력이다. 당신이 한낯 자신을 마음의 차원, 그 중에서도 아주 일부에만 속한 작디 작은 존재로만 인식한다 하더라도 당신 안에 잠재된 그 에너지는 절대로 어디로 가지 않고 언제나 그 곳을 지키고 있다.

코칭은 바로 당신안에 잠자고 있는 이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일이다. 두꺼운 지각을 뚫고 들어가 지구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석유를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석유를 찾기 위해 땅을 뚫고 내려가는 이유는 단 하나 아닌가? 그곳에 석유가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치를 잘못 잡아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그 큰일을 벌이지 않는다. 코칭도 마찬가지이다. 숨겨진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결코 코치도 고객도 코칭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우리 안에는 항상 폭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잠재력의 화산이 숨어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전제되어 있기에, 코칭이 존재할 수 있으며, 코칭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http://wilber.shambhala.com/html/books/kosmos/excerptG/part1.cfm/